◀ 한경면 한원리 '서리논물'은 수질에 따라 음용수인 '먹는물'과 우마급수장인 '구진물로 구분됐다.

◈서리논물<먹는물·구진물>(한경면 한원리)

 가을이 점차 깊어지자 산 속의 바다도 깊어진다.능선마다 출렁이는 억새의 물결.한라산의 가을능선은 온통 억새밭이다.

 이른 아침,제주시에서 중산간 도로를 타고 한경면 한원리로 가는 길에 취재팀은 영롱한 아침이슬을 맞아 반짝거리는 억새군락을 봤다.장관이다.9월말에서 10월중순까지 꽃이 피는 억새는 이듬해 봄까지 구경할수 있다.

 그러나 억새의 절정은 10월 이맘때부터 11월 중순까지 이삭이 떨어지지않은 억새 꽃다발이 하얗게 일렁거리는 때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억새와 갈대를 구분하고 넘어가야 겠다.억새와 갈대는 같은 벼과의 1년생 풀로서 꽃이 피고 지는 계절까지 비슷하다.

 그러나 억새와 갈대는 엄연히 다르다.가장 쉬운 구분법은 억새는 산이나 비탈에,갈대는 물가에 무리를 이뤄 산다는 점이다.억새는 뿌리가 굵고 옆으로 퍼져나가는데 반해 갈대는 뿌리옆에 수염같은 잔뿌리가 많다.억새의 열매는 익어도 반쯤 고개를 숙이지만 갈대는 벼처럼 고개를 푹 숙인다.

 또 하나 혼란스러운 것은 부들이다.그러나 억새나 갈대처럼 구분이 어렵지 않다.물가에 자라는 부들은 키가 억새나 갈대의 3분의 2 정도이고 소시지처럼 생긴 꽃을 피운다.

 서설이 좀 길어졌다.취재팀이 가을의 서정이 깃든 억새 바다를 뒤로 하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서리논물’이다.서리논물은 다시 ‘구진물’과 ‘먹는물’로 나뉜다.상수도가 개설되기 이전까지 구진물은 주로 우마급수장으로,먹는물은 말 그대로 음용수로 사용됐다.

 리사무장 좌옥윤씨(74)는 “한원리는 예로부터 물이 귀해 서리논물 뿐만아니라 장태물·쌍물통·누룩이물 등의 연못을 누대로 애써 가꿔왔다”면서 “옛날에는 조수1리 사람들도 가뭄이 들면 쇠에 물허벅을 싣고 와 물을 떠다 먹었었다”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한원리 중심에서 서쪽에 논이 있었으며 이곳에 물을 대던 자연 연못이었기 때문에 ‘서리논물’이란 지명이 붙게 된 것”이라고 추정한다.

 서리논물 가운데 ‘먹는물’은 면적이 600㎡가량되며 인공연못이다.비교적 수량이 많고 1.5∼3m가량의 돌담이 못 주위에 쌓아져 있다.또 울타리를 따라 예덕나무·멀구슬나무 등이 자라고 있으며 못 입구에 팽나무 2그루가 떡 버티고 서 있는 게 운치를 더하고 있다.

 이곳에서 물풀의 왕은 큰골이다.사초과에 해당되는 부들은 못 중앙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구진물’은 ‘먹는물’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 있다.이 물은 ‘먹는물’에 비해 수질이 처져 주로 소가 먹기 때문에 구진물이다.

 이 물은 원래 2개의 못으로 돼 있었으나 이가운데 1개는 70년대에 매립되고 만다.다름아닌 어린이들의 물놀이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이 일대는 ‘빌레’지형에다 비스듬히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다 못이 깊어 3차례의 익사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에따라 현재 못 크기는 150㎡로 축소됐다.

 또 우마급수장으로 활용되던 이 물은 축산업의 쇠락과 함께 지금은 농업용수로 활용되고 있다.대표적인 수생식물로는 수련·마름·말·큰골 등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예전에는 “돗줄래(물베염) 뿐만아니라 개구리·맹꽁이 등 양서류가 많았으나 농약 때문인지 이가운데 돗출래는 자취를 감추고만 상태”라고 말했다.

 간혹 맹꽁이가 출현하나 개체수가 크게 줄어든 듯,가끔 볼수 있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환경단체들은 남생이·자라·구렁이·까치살모사·비바리뱀·맹꽁이 등 6종은 멸종위기로 분류하고 있다.그러나 환경부는 구렁이만을 멸종위기 동물로 구분하는 등 정부분류와 실제 현실의 괴리감이 크다.

 다행스런 것은 요즘에도 이곳에선 반디불이를 볼수 있다는 것이다.

 반디불이는 천연기념물 제322호로서 포획·채집하면 문화재 보호법 220조 및 89조 규정에 의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의 벌과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반디불이는 사람과 친숙한 곤충이죠.서식환경이 좋아도 인근에 사람이 ㅇ으면 잘 살지 않아요.이런 반디불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인간도 생존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거나 다름없을 게요”

 길 안내를 해준 좌옥윤씨는 “반딧불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땅심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가슴 한편에 간직된 소중한 추억 속의 반딧불이가 희귀생물로 보호받고 있는 현실을 무척 안타까워 했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김영학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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