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공개의 취지는 좋지만 불공정한 선정 기준엔 문제가 있다. 자신의 이익을 좇아 이 당 저 당으로 옮겨 다니는 '철새정치인'의 선정만 해도 그렇다. 툭하면 당적을 옮기는 당에서 힘있는 지도자급 정치인은 놔두고 힘없는 의원들만 선정한 건 뭐냐.

부패한 정치인 선정에서도 거물들을 빼놓은 것도 불공평하다. '보스 정치'의 폐단을 바로 잡겠다면서 대어는 놔두고 피라미만 잡겠다는 건 모순이 아니냐. 진정으로 정치개혁을 원한다면 우리의 정치풍토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장본인 격인 인사들부터 책임을 묻는 게 순서라고 본다" 시민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4.13총선의 공천부적격자 명단공개'와 관련한 최근의 TV토론회에 출연한 한 국회의원의 볼멘소리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여야가 13개월이나 끌면서 정면대결로 치닫던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 방지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 각종 정치개혁입법 협상이 최근 극적으로 타결됐다. 그러나 그 내용이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따른 나눠먹기 담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정치발전과는 무관하게 기존 정당과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챙기기와 확대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인상이 짙다. 당초 선거법 개정의 목적이었던 정치개혁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현행법보다도 후퇴한 '개악'입법이란 지적이다. 국민과 언론,학계,시민단체들은 이를 일제히 비난하고 나서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여당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도 당 지도부에 대해 질책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선거법 내용을 전면 재협상 하도록 지시했다. 시민단체의 선거개입을 금지한 선거법 87조를 폐지,국고보조금 증액 백지화 등.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백지상태에서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정치개혁 입법을 하기로 합의했던 여야 총재들이 막상 비난이 거세 지자 자신들은 전혀 몰랐던 일인 양 다시 뒷북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번의 경우를 보노라면 여야의 최고 지도자들이 입버릇처럼 해오던 정치개혁 의지는 어느 정도인지 의아해진다. 과연 여야 총재들은 선거법 개정안 협상내용을 보고 받지도 않았을까. 협상 당사자들이 당내 최종 책임자들의 재가 없이도 중차대한 협상을 할만큼 정당이 민주화가 됐다는 건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하주홍·코리아뉴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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