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제주4·3연구소 주최 아홉번째 증언 본풀이마당
‘예비검속 60주년의 역사-고난의 시간을 말하다’

   
 
   
 
지난 2008년 11월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측(정뜨르)의 차갑게 얼어붙은 땅 속에서 찾아낸 한 무더기 유해에 유족들은 가슴으로 울었다.

그리고 4·3 62주기를 앞에 둔 3월 마지막날 잊혀지지 않는 ‘역사’를 세상에 끌어내면서 큰 울음을 삼켰다. 행여 울음소리에 묻혀 사실을 전하지 못할까하는 노파심에서다.

31일 제주시 열린정보센터에서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하는 아홉번째 4·3증언본풀이가 열렸다.

‘예비검속 60주년의 역사, 고난의 시간을 말하다’ 주제의 이날 증언본풀이 마당에는 강창옥(74·애월 하귀)·고창남(67·남원 의귀)·양신하(72·대정 무릉)씨 등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이뤄진 예비검속 희생자 유족들이 그날 이후의 아픔을 쏟아냈다.

   
 
  ▲ 강창옥씨  
 
전 북부 예비검속 희생자유족회 부회장인 강창옥씨는 기억을 꺼내며 울컥 목이 먼저 매어버렸다.

강씨는 “열 네 살, 열 한 살, 여덟살, 네 살이던 네 남매가 한순간 부모를 잃고 세상에 버려졌는데 ‘빨갱이’소리까지 들어야 했다”며 “주변에서 다 우리를 저주하고 욕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힘들었던 기억에 몇 번이나 말을 멈췄던 강씨는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제주항으로 나가 수장된 것으로, 어머니는 지금 비행장(정뜨르)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떻게 도와주지 않아도 좋으니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만 인정해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 고창남씨  
 
정뜨르 유해 발굴을 통해 ‘아버지’를 찾은 고창남씨도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을 담당하게 풀어냈다. 고씨는 “아버지가 끌려간 뒤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화병으로 자리보전하는 날이 많았다”며 “밖에서 낯선 목소리만 들려도, 배달부가 찾아온 기척만 나도 정신없이 뛰쳐나가던 어머니를 보는 것도 너무 애가 탔다”고 털어놨다.

고씨는 증언 중 DNA 분석 결과 통지서를 꺼내 보였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일본 츠시마까지 갔었다던 고씨는 “헛봉분도 마다하던 어머니 옆에 아버지 유해를 모셔와 안장해 드리게 돼 기쁘지만 아직 못 찾은 유족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안타깝다”며 “유해발굴을 유족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차원에서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원혼들의 한이 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 양신하씨  
 
백조일손유족회 고문인 양신하씨는 ‘형님’을 찾기 위해 40년 가까이 예비검속에 대한 조사를 해온 산 증인이다.

양씨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2007년 11월 집단학살로 확인된 제주섯알오름사건을 제주 4·3사건 때부터 시작된 가족의 비극과 맞물려 설명했다.

양씨는 “1950년 예비검속이후 1957년 40년만의 대흉년, 1959년 사라호 피해 등 부모가 살아있었어도 힘들었던 시간을 아버지·어머니 없이 견뎌야했던 ‘자식’들이 많았다”며 “이 자식들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달라는 호소를 40여년 만에 들어줬지만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가 더 많다”고 말했다.

 

 

 

증언본풀이가 끝나고 한참동안 열린정보센터 세미나실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역사를 직접 듣고 숙제를 않은 현 세대나 잊혀진 역사로 남기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낸 4·3세대 모두 원하는 것은 화해와 상생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43희생자DNA분석결과통보서  
 

한편 4·3연구소는 오는 6일 제주공항 유해발굴 1차 감식 결과 보호회를 연다. 이날 오후2시부터 제주웰컴센터에서 열리는 보고회에서는 13구의 신원확인 결과와 함께 보철 등 유해에서 확인된 일부 특이사항을 유족들에게 공개, 추가 신원확인을 위한 노력이 기울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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