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62주기 추념 제17회 4·3문화예술축선 3~4일 행사 풍성
4월굿-백조일손, 4·3문학기행, 의식주체험, 청소년 평화한마당’
비극적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섬’ 너머와 다음 세대에 전하는 작업은 소리없이, 그러나 강하게 이뤄졌다.
‘침묵을 흔들어 평화의 너울로’ 4·3을 알리고자 한 제17회 4·3예술문화축전의 첫 주말은 소리 없는 강한 울림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았다.
# “하나가 되어사 허는 거라”
▲ 사월굿-백조일손 | ||
놀이패 한라산의 1950년 섯알오름사건 60주년 특별공연 ‘사월굿-백조일손’이 3일 오후 7시, 4일 오후4시와 7시 세 차례 제주와 만났다.
음력 칠월칠석날 돌아오지 못한 길을 나선 사람들은 신고 있던 신발을 흔적처럼 남겼다. 극 처음 약속했던 것처럼 관객들은 한림과 대정, 안덕, 중문 등 섯알오름에서 숨져간 사람들의 오늘로 무대와 함께 했다.
“조상이 다른 백 하루방의 자손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가 되었으니 한 자손으로 위하면 되지 않겠냐”는 배우의 대사에 객석 여기저기 눈물이 번졌다.
▲ 사월굿-백조일손 중 | ||
배우의 입을 통해서, 또 객석이 함께 부른 노래가 사월굿에 젖어 들 무렵 극은 그날을 기억하고 상생을 기원하는 비석을 세우는 마지막 장면으로 다가간다.
극 속 흔적이자 미래인 비석의 역할은 관객이 대신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마당극 속으로 들어간 관객들 역시 진지하게 역할에 임한다. “가족 중에 경찰이나 군인이 있는 사람은 맘 상할지 모르니 먼저 집에 가라”는 말이 툭하고 전져진다. 한껏 희극화한 경찰과 군인은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날에 다가가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감상문을 써야 한다”는 한 중학생과 함께 하고도 부담 없이 그날을 기억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
▲ <사월굿-백조일손> 중 | ||
#해원의 바다를 건너 상생의 들판으로
▲ 제주작가회의 43문학기행 | ||
4일 한국작가회의제주도지회(이하 제주작가회의)가 마련한 4·3문학기행은 이 곳에서 시작됐다.
제주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새로 풀어낸 4·3 소재 60여점과 소설가 현기영씨의 ‘쇠와 살’ 등 이미 잘 알려진 4·3작품들이 야외 공간에 내걸렸다.
오는 12월 20일까지 자리를 지킬 작품들에서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대전시 동구 망월동에서 찾은 ‘오라방’에 대한 애틋함이 “…제발 와줍써/한번만 보게 마씀/한번만 보게 마씀”(김문택작 ‘흙 한줌’ 중) 귀에 밟힌다. “…죽은 어미 가슴팍 헤집는 아기/어둠이 고랑을 삼킬 때까지…/새벽에서 어둑어둑 해넘이까지/가슴팍 헤집던 그 아기…”(허영선 작 ‘용강마을’중). 작가들은 그 날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임을 글자를 통해 풀어냈다.
“4·3의 아픔은 제주어가 아니면 제대로 풀어내기 힘들다”는 한 참가자의 말에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게 ‘해원의 바다’를 건넌 기행단은 소설가 현기영씨와 함께 ‘상생의 들판’으로 향했다. 자리왓과 고지우영, 빌레못굴 등 4·3의 아픔이 남아있는 현장을 둘러보고 죽임이 아닌 살림의 문학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나눴다.
# 청소년평화한마당·의식주체험
▲ 의식주 체험 | ||
평화의 풍선 날리기와 몽실몽실 비누방울로 평화 그리기 등에는 저학년 이하의 어린이들이, ‘똥깅이’천막극장 등에는 고학년 이상의 청소년들이 모여들었다.
3·4일 같은 장소에 열린 4·3의식주체험 한마당의 참여열기도 뜨거웠다.
▲ 의식주 체험 | ||
입에 맞지 않아 고개를 흔드는 어린아이들과 달리 중년 이상 참가자들은 맛을 음미하며 옛 생각에 빠졌다.
의 마당에는 갈중이며 당시 경찰의 복장 등이 전시됐고 한지로 갈옷 등을 직접 만들어보는 코너도 운영돼 눈길을 끌었다.
▲ 의식주 체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