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 이름마다 다 사연이 있다. '쌍물통'은 말그대로 음용수통과 우마급수통이 구분돼 있다.

◈쌍물통·장태물·누룩이물(한경면 한원리)

 한경면 한원리의 못은 흑백영화의 빛바랜 영상과 같다.서리논물을 비롯 쌍물통·장태물·누룩이물…,우마(牛馬)가 목을 축이고 물허벅을 진 아낙네가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던 그곳에는 저마다의 사랑과 저마다의 소멸의 표정이 배어있다.

 물이 빠져나간 못 바닥은 퇴적물의 스펙트럼.주름진 뻘 자국은 마치 난해한 문제와도 같고 고통스런 글쓰기의 흔적과도 같다.

 한원리는 예로부터 물이 귀한 곳이었다.오죽하면 물이 고여있는 곳을 남한테 알려주지 않았을까.한원리사무장 좌옥윤씨(74)는 “한원리에 있는 못은 대부분이 인공못이다.옛날부터 물이 귀했기 때문에 물이 고일만한 곳은 모두 팠다”고 거들었다.

 예전에는 우마(牛馬)를 많이 했었기 때문에 어디 다니다가 물이 고인 곳이 있으면 자기만 그 위치를 알고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가뭄때면 자기만 몰래 그곳에 가 물을 떠다 먹었을 정도로 물이 귀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그래도 조수1리보다는 물 사정이 좀 나았다.서리논물의 먹는물이나 쌍물통은 조수1리에서 조차 이곳에 와 물을 떠다 먹었을 정도로 비교적 수량이 많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쌍물통 인근 ‘촐왓’에는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堂)이 모셔졌다.마을사람들은 매년 음력으로 칠월칠석이면 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미신’으로 내몰려 당이 철거된다.

 이 때문일까.이후 쌍물통의 수량이 급격하게 줄어 음용수로 쓰임새를 점차 잃게 된다.

 쌍물통은 말그대로 물이 두 개다.60㎡크기의 우마급수장은 당이 철거된 후 습한 땅으로 남아 있을 뿐 물이 거의 고이지 않은다.

 물론 음용수로 활용됐던 못은 면적이 40㎡가량되며 아직도 물이 고여 있다.또 돌계단과 함께 물허벅대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이곳 주민들의 애정이 듬뿍 밴 곳이었음을 쉽게 짐작할수 있다.그러나 오랫동안 인적이 끊긴 탓인지 주위에 소나무 숲이 무성하고 진입로가 예덕나무와 찔레,선인장으로 뒤덮여 있는 채 방치돼 아쉬움을 준다.

 상수도가 보급돼 물 걱정이 없어짐으로써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점차 멀어졌고 이제 그곳에는 세월의 무상함만 남아 있다.

 누룩이물은 누룩빌레에 들어서 있는 못이다.‘누룩돌’은 땅속에 깔려진 넓적하고 검누른 빛을 한 토질성이 많은 돌이다.면적은 60㎡가량되며 수심이 깊고 물 빠짐이 거의 없어 근래들어서도 가뭄때면 농업용수로 곧잘 활용되고 있다.

 장태물은 못 생김새가 옛날 선조들이 쓰던 그릇인 ‘장태(장테)’를 닮았다.장태는 ‘양푼 모양으로 하되 그 보다 크게 만든 질 그릇’이다.

 이곳 역시 땅을 판 곳에 자연스럽게 고인 못이나 71년 새마을사업과 함께 못의 일부가 매립되면서 이 도로가 울타리화 됐다.울타리가 곧 도로인 셈.게다가 이 과정에서 장태처럼 동그랗던 못도 거의 사각형에 가깝게 정리됐다.

 못 한켠에는 사각형의 시멘트 담이 둘려쳐진 곳이 있다.탈의장이라고 한다.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길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던 그곳에는 지금 호랑가시나무 한그루가 독차지한 채 계속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결과,이곳에는 천남성과의 창포를 비롯 흰꽃여뀌·여뀌(마디풀과),골풀(골풀과),자귀풀(콩과),좀개구리밥(개구리밥과),물닭개비(물옥잠과),사마귀풀(닭의장풀과),피막이(산형과) 등의 식물이 있고 붕어와 소금쟁이가 산다.

 농약과 생태맹(生態盲)때문에 멍든 땅이지만 아직도 이곳은 사람과 자연의 완충이며 진행형의 대지인 셈이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김영학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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