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천안함-북핵문제 '투트랙' 접근…안보리 對北대응의 실효성도 의문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바뀌고 있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천안함 '해법' 도출이 생각보다 그리 녹록치 않다는 현실적 고민에서 비롯됐다. 군사적 대북 대응조치는 논외로 두고 천안함 출구전략을 마련하려던 외교적 해결 노력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강경대응을 '전적으로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천안함 사건의 유엔 안보리 회부를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확고한 공조를 바탕으로 유엔 안보리 차원의 일치된 대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돌입했다.

설령 대북 제재나 규탄결의안이 아닌 법적 구속력이 없는 안보리 의장성명이라 하더라도 이는 천안함 침몰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규정짓는 국제적 공인이 되는 만큼 관련국 설득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천영우 외교통상부 제2차관이 8일 중국을 방문해 '설득 외교'에 나서고, 국방부도 민군 합동조사단을 유엔 안보리에 파견해 천안함 조사결과를 설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국제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천안함 조사결과에 여전히 유보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우리 정부의 속을 태우고 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줄곧 강변하면서 안보리 논의가 진행될 경우 초강경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특히 이같은 북한의 호전적 행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구도 등 내부문제와 연결되면서 북한의 정치적 계산은 미국의 외교를 딜레마에 빠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데다가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안보리 제재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중국의 협조가 절실한 만큼 천안함 사건에서 한 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서해상에서의 대규모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했고, 6자회담의 조기 재개를 원하는 중국의 입장을 감안해 천안함과 북핵문제를 분리대응하는 이른바 '투트랙' 접근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투트랙' 접근은 천안함 사건 초기에도 그대로 유지됐던 방침이었고, 다만 한국의 공조 요청에 따라 '先 천안함, 後 6자회담'이라는 우리 정부의 원칙에 힘을 실어준 측면이 강했다.

실제로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달 李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재확인하면서도 천안함 사건 처리와 북핵문제를 '투트랙'으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한국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보리에 공식 회부하며 총력 외교전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제재하려는 (안보리 차원의) 외교적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고 발언해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면서 "한국이 천안함 사태 처리를 주도하면 미국은 그에 따를 것"이라고 말해 '소극적 개입'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미국의 외교수장인 클린턴 국무장관도 요즘에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천안함 사건이 미국의 관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고, 최근까지 천안함을 대서특필했던 미국 언론들의 기사 게재 빈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만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7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도발이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유엔의 '성명'이 적절한 시점에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혀 의장성명 채택 추진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현재 유엔 안보리는 이란 제재 문제와 이스라엘의 국제구호선 공격사건 등으로 바쁘게 돌아가면서 천안함 사건은 협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안보리는 이달 중에 전체회의 표결을 통해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번 주 중국을 방문해 미국이 주도하는 추가 제재 움직임에 반대해 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란 핵문제와 천안함 사건 등의 유엔 안보리 논의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과 한국, 이란 정부로부터 똑같이 협조 요청을 받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천안함 사건의 안보리 대응조치는 관련국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또 알맹이 없는 의장성명 정도로 흐지부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 1일 유엔 안보리가 이스라엘의 국제구호선 공격 사건을 '중립적인 톤'으로 비판하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만 하루만에 '초스피드'로 채택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과 성격규정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이 확고한 공조체제를 가동했지만 실효성 있는 대북 대응과 출구전략 차원의 외교적 해법을 놓고서는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양상이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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