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유족회 지난 2일 대전 산내 골령골서 합동위령제 봉행…“이제 더 흘릴 눈물도 없어”
진실화해위, 제주4·3 수형인 포함 대전형무소사건 정부차원의 사과·위령사업 지원 등 권고

 

그날, 하늘이 먼저 울었다.

 

며칠 전부터 장맛비가 예보됐었지만 지난 2일 대전시 산내 골령골은 4·3유족들의 도착을 앞두고서야 비에 젖기 시작했다.

제주에서부터 정성스럽게 마련한 제물이 올려지고 혈족의 이름을 찾는 유족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거둬지자 비는 미리 약속이나 한 듯 그쳤다.

 

▲ 제주 4.3유족회는 지난 2일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자합동위령제를 봉행했다.
▲ 제주 4.3유족회는 지난 2일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자합동위령제를 봉행했다.
43유족회 주관으로 올해로 벌써 열한번째 골령골에서 치러지는 위령제다. 지난해까지 244명의 원혼이 제주평화공원에 안장되면서 참가 유족의 수가 줄기는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여전하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며 마른 한숨과 합장하듯 손을 맞잡은 유족들 대신 하늘이 눈물을 쏟았다.

 

 

▲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제60주기 11차 대전산내학사사건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2일 대전 문화동 기독교연합봉사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어렵게 발걸음을 옮겨 대전시 문화동 기독교연합봉사회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제60주기 11차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들을 기다린 것은 대전형무소 사건에 대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결정문이었다.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가 대전형무소 사건이 정부에 의한 정치적 살인이었음을 공식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공주·청주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 3400여명이 집단 희생됐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대전형무소 사건(대전 산내 학살사건)은 1950년 7월 초순경 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당시 대전형무소 제소자 및 인근지역 보도연맹원들이 국군·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당한 사건이다.

희생자만 최소 1800명에서 최대 7000명까지 추정되면서 한국전쟁 전후 최대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으로 알려졌다.

특히 희생자 중에는 제주에서 끌려간 4·3관련 수형인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도민 희생자만도 3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주한미군 정보일지’ 등 미군자료와 당시 헌병, 경찰, 형무관 등 현장 목격자들의 진술과 현장조사 등을 토대로 이 같이 결론을 내렸으며 희생자 가운데 333명과 희생 추정자 18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50년 6월28일께부터 7월17일까지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1800여명이 충남지구 CIC(육군 특무부대)와 헌병대, 경찰 등에 의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불법적으로 희생됐다.

진실화해위는 “비록 전시였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을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 처형한 행위는 정치적 살해 행위”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은 국가에 대해 희생자와 그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것과 위령사업 등에 대한 지원, 전쟁이나 비상사태시 민간인 보호조치에 관한 규정 정비, 평화인권교육 강화 등을 권고했다.

행사장은 일순 조용해 졌다. 환영의 분위기 보다 축축이 젖은 공기 사이로 깊은 한숨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가 대전형무소사건이 정부에 의한 정치적 살해였음을 공식 확인하고 있다.
대전산내유족회 김종현 회장은 “10년을 기다린 탓인지 허망하고 오히려 담담하다”며 “산내학살사건이 국가에 의한 억울한 희생임이 공식 인정됐지만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지난달말 종료되는 갈 길이 아직도 멀다”고 말했다.

 

4·3유족회 양남호 대전위원장은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있다고는 하지만 진실화해위를 통해 확인된 제주 출신 희생자가 88명밖에 안된다”며 “같은 아픔의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212명의 넋을 달래기 위한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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