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장수명

펄떡펄떡 뛰는 팔월이가 찾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열기가 우리나라 전역을 뒤덮고 있다며 연일 폭염주의보가 내리고 있다. 이런 더위를 피해 산으로 바다로 떠나온 피서객들을 올레길만 나서면 만나게 되는 요즘이지만, 제주도로 이사를 오고 난 후, 우리가족은 휴가다운 휴가를 한 번도 간 일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집 앞에 바다가 넘실대고, 때가 되면 야생 돌고래가 제 흥에 겨워 몸을 공중부양 시키며 나를 향해 반기는 이곳에서 뭐 또 새삼스레 사치스런 휴가를 타령하겠는가!

이런 기특한 내게 내가 칭찬 한마디 건넨다.
'예쁘고 착한 바람아이 수명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번 여름 피서는 편지를 쓸 작정이다.

이제껏 시간에 쫓기고 이제 막 세상으로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한, 태어난 지 16개월 반이 된 내아기 때문에 미루고 미뤘던 편지를 쓰면서 이 더위를 이겨낼 생각이다.

아주오래전에 내가 하는 말이 글자가 되어서 나를 뚫어지게 올려다보던 그 짜릿했던 순간을 떠 올리며, 며칠 전 문방구에서 고르고 골랐던 편지지에 또박또박 글씨를 새길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고……,

우리 아기가 어찌나 잠이 없는지 내 시간을 내어 주지 않는다는 투정도 적당히 쏟아가며, 그래도 그 틈에서 열심히 제 일을 하는 바람아이 수명이라며 은근슬쩍 칭찬 한마디 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긴긴 편지를 쓸 작정이다.

그리하다보면 숨이 턱턱 막히고, 펄떡펄떡 뛰는 8월이라도 제 풀에 지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저만치에서 물러나 또박또박 새겨지는 글자를 따라 빙그레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멀지 않은 날에 처진 내 어깨를 세워주고, 휑한 마음 밭에 금방이라도 짙은 검은색 잉크물이 똑똑 떨어질 것 같은 따뜻하고 정겨운 글씨들이 나를 응시하며 '그래도 잘 하고 있다고, 그렇게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씩 떼면 된다며' 토닥토닥 다독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혹여, 그렇게 따뜻한 편지를 한 통도 받지 못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활을 알기에, 이미 그들의 마음 밭 어느 곳에 내 땅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서운해 하거나, 안달을 하며 앙앙불락 하지 않을 수 있는 내가 되어져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것처럼 5월에 폭설이 내리고, 우박이 쏟아져 내리던 올 해였다. 그런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팔월이가 찾아오고 올 해처럼 더운 건 처음이라는 말들이 쏟아지는 이 때, 오래도록 소식 전하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편지 한 통씩 써보면 참 좋을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내 소리가 내 손끝에서 또박또박 새겨져, 제 소리를 내는 활자로 탄생되어지던 그 때의 짜릿한 기쁨과 기분을 새삼스레 다시 한번 만나보면 참 좋을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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