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회는 도의적 책임이 상실된 사회다. 사실 제주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위안이 되진 않는다. 이것은 그저 가슴 아픈 한국사회의 현실일 뿐이다. 하여간 별로 재미없는 얘기다. 잠시 옆길로 새보겠다.
 
요즘 김지운 감독의 화제작 <악마를 보았다>의 작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다고 판단해 제한상영가 등급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두 번이나 밝혔다. 결국 세 번째 심의버전인 <악마를 보았다>는 현재 극장에서 열띤 상영 중이다. 새삼스레 이 지면에서 영화에 대한 혹독한 비평이나 찬란한 찬사 따위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영화는 알아서들 보셔라. 판단은 관객의 몫이니. 다만, 이 영화의 척추를 따오려고 한다.
 
"짐승을 대적한다고 해서 짐승이 되려고 해선 안 된다" 극중 캐릭터가 친절하게 대사로 말을 해준 내용이다. 영화에선 "그럼, 고통과 두려움조차 줄 수 없단 말인가?"라는 감정선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잔혹한 장면이 연이어 계속해서 지나는데 필자는 잠시 딴 생각에 빠졌다. 이 영화와는 무관하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이야"라는 악마인지 천사인지 모를 목소리가 이명처럼 계속해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영화와 무관하게 자성에 빠졌다.
 
한 달 전, 제주도청에 방송영화드라마 제작비 지원 심사 및 선정작 현황의 정보공개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평소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심사나 배급지원심사 등을 비롯한 각종 심사에 참여해왔던 필자는 <악마를 보았다>의 잔인성 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다. 대개 정확한 심사규정이 없더라도 해당 심사위원 자신에게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지원작이 있을 경우에는 자진 심사를 포기하거나 혹은 주최 측에서 관련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정보공개 내용에는 도의적 문제가 있는 결과가 2건이나 드러났다. 이러한 심사결과를 필자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주도청도 알고 있었고 비전문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해당 위탁처도 알고 있었다. 재미없는 이 사실을 알리는 이유는 '내 안의 방치(放置)'라는 것을 달고 살지 말자는 자성에 의한 것이다. 방송영화드라마 제작비 지원 심사 제도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다고 판단해야 할 것은 정작"영화 속"일이 아니라 "현실 속"일이어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가장 고등한 능력은 불행하게도 도덕의식을 갖고 있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필사적으로 그 능력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컴트루픽쳐스 오주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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