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도록 한글을 떼지 못해 어미와 아비의 구박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아들이 심기일전하여 한글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주머니에 든 괴물들(Pocket Monster :포켓 몬스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말도 안 되는 단어들을 주어 삼키며 하나씩 외워 가는 모습이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데, 다 외우면 포켓 몬스터를 몽땅 사주겠다는 아비의 말에 가속도가 붙어 어느 새 모든 한글을 막힘없이 읽기 시작하였다. 이제 몬스터를 사줄 차례였는데, 불행하게도 몬스터란 놈이 그렇게 많은 줄, 게다가 진화까지 하는 줄 전혀 모르고 있던 아비의 실수로 인해 몇 개를 사주는 선에서 끝나고 말았다.

 일단 모든 몬스터의 이름을 다 외운 아들은 한 두 번 채근하는 듯했으나, 이내 별 말이 없었다. 아비의 처지를 아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기대조차 안한 것인지? 아비 역시 '몇 개만 있으면 되겠지 뭐'라고 자위하며 꿀 먹은 벙어리를 자처한다.

 아들과 나는 분명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혼란스러운 냉전과 탈냉전, 그리고 새로운 패권주의의 대두라는 숨가쁜 변화의 시대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세상이 빚어내는 차이일 수도 있으며, 숨겨진 내막이 있는 급속한 세계화에 적응할 수 있는가 여부에 달린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수필(手筆)과 타자(打字)의 구분에서 기인하여 점차 간극이 확대되던 서로 다른 세상이 어느 순간 함께 숨쉴 수밖에 없는 공존의 공간에 놓여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폐쇄된 듯하면서도 또한 개방적인 인터넷의 세상이 이러한 다름의 느낌을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혹자는 수직의 세대와 수평의 세대 운운하면서 삶 자체를 하나의 단계로 여기고 오로지 수직 상승을 위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던 세대와 자신이 요구하거나 추구하는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있고, 또한 하고자 하는 세대의 차이라고 하면서, 이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서로의 세대간에 그릇이, 또는 콘텐츠가 다르다고 하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아예 딴 살림을 차리겠다고 막말을 하기도 한다. 젊은것이나 늙은 것이나 간에.

 이제 내 아이에게, 나는 무엇으로 투영될 것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나마 그릇이 같았을지도 모르는 내 아버지와 나 사이에도 간극은 엄청났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스무살 청춘 내내 시도 때도 없는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아마 아버지도 소주잔에 떨어지는 쓰디쓴 눈물을 되삼켜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아비를 통해 가족과 사랑, 그리고 우리 민족을 가슴 벅차게 조우할 수 있었다. 비록 그릇, 내용, 색깔, 그리고 분위기도 영 다른 아들과 내가 언젠가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직은 서로 닮은 듯한 발가락만 가지고 자족하지만.

 어쩌면 아들로 지칭되는 그들이야말로 아비의 아비처럼 구겨진 현대사에 찌들이지 않고, 아비처럼 맨 몸뚱이로 뛰어나가 끝내 피투성이가 되지 않으며, 참 더러운 세상임에도 온갖 울긋불긋한 꿈을 꾸며, 당돌한 반역과 뜬금없는 발언으로 오히려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니. 그것이 그들의 색깔이라면, 그들의 삶이라면 어쩔 것이냐? 전면전이냐 아니면 평화협정이냐!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서 우리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하리라. 아이의 입에서 또 '진화된 발상'이 튀어나오더라도, 나는 믿나니 명명백백한 아국(我國)의 영토 독도(獨島)도 그들이 지킬 것이다.<심규호·산업정보대 교수·중국어통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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