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당사자 사이에 법적인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또는 분쟁 단계까지 가진 않았으나 장차 어떤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서로 간에 이로 인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약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부제소합의 또는 부제소특약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부제소합의를 한 뒤에 막상 분쟁이 터졌을 때에는 일방이 처음에 했던 약속을 깨뜨리고 소송을 제기하는 예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 때 소를 제기당한 상대방은 당초 쌍방이 자유로이 작성한 부제소합의에 관한 약정서를 증거로 내면서, 원고가 제기한 소가 부제소합의에 위반한 것이라고 항변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 법원은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원칙적으로 부제소합의에 위반하여 제기된 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판결을 받게 된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외쳐보아도 소용이 없다. 법원은 아예 본안심리로 통하는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부제소합의가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려면, 약정 자체가 불공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기·강박 등의 하자가 없어야 하며, 당사자가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권리관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제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한 일단 이루어진 부제소합의는 강력한 보호를 받는다. 판례는 부제소합의로 말미암아 그 대상으로 된 권리관계가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라는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그 부제소특약이 당해 강행법규에 위반하여 무효로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까지 하고 있다.

특별법으로 부제소합의 효력을 제한하는 예도 있는데,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리한 소제기의 금지조항'을 규정한 약관조항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여, 일정한 서식에 의하여 다수인과 사이에 일률적인 내용으로 체결되는 계약에 있어서 고객이 자칫 간과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위험성을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나중에 분쟁이 발생하고도 소송 한 번 제기하지 못하고 발만 구르는 사태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계약서를 쓰는 단계에서부터 부제소합의 조항이 들어가 있는지 여부를 꼼꼼히 살펴볼 일이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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