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자의 '제주바다를 건넌 예술가들']57. 고영우

인간의 외로움, 불안, 나약함의 고통은 세계 내 모든 개인의 보편적인 고통
고영우의 표현주의는 자신의 삶의 반영이자 인간 허무 표현에 적합한 방법

   
 
  ▲ 고영우 화백 근영  
 
# 고영우의 화가 인생

고영우는 서귀포 출신 중견작가이다. 서귀포하면 고영우가 떠오를 정도로 서귀포 곳곳에 그의 체취가 배어있다. 어떤 바람도 서귀포에서 그의 체취를 쓸어가지 못한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줄곧 서귀포에서 작업을 하며, 서귀포 예술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실존적인 인물을 통해 존재의 허무를 그려온 화가이지만, 지금까지 80호~100호 정도의 서귀포 풍경화를 5점 남짓 그렸다. 1994년, 서귀포 앞바다 풍경이 옛날과는 너무 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그의 유년시절 보았던 해안을 떠올리며 과거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는 심적으로 답답할 때나 괴로울 때면 서귀포 해안의 소남머리로 달려간다. 그곳에 가면 인생살이의 서글픔을 다소나마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동요치 않게 하는 작품은 이미 예술적 가치를 떠나 있으며, 대상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 개념적으로 혼란스런 작품들은 결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좋은그림은 화가의 미적 사상이 충실하게 담긴 작품을 말한다. 미적 사상은 화가 자신의 성장배경과 예술적 감성들이 형상적 논리로 정리된 것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화가의 미학을 구성하는 중요 부분으로 인식한다. 다음으로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삶의 진솔성이 투영되어야 한다. 삶의 진솔성이란 화가의 일상에서 생활적인 솔직한 감정, 혹은 경험적으로 진리와 연관된 예술가의 삶을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고영우는 1943년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오현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제주시의 중·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이 만든 '귤동인회'에서 활동하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건강상의 문제로 줄곧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고영우는 인상파 그림을 좋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보여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의 그림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고통, 고뇌, 슬픔을 그려낸 코코슈카의 인물은 그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1964년, 고영우는 아버지의 권유로 홍대 미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의 인물 그리기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인한 정신적 갈등은 그로 하여금 인간의 고뇌에 깊숙이 다가서게 하였다. 대학에서 쉼 없이 인물크로키에 열중하던 고영우는 1970년,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고향 서귀포로 돌아온다. 1975년, 결혼을 하였다. 그의 아내는 고영우가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보며 좋은 그림이 나올 때마다 함께 기뻐해주었다. 그것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희였다. 남주중·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1년 6개월 정도 근무한 것을 빼고는 오로지 전업작가로 살아온 고영우에게 아내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제주도에 전문 전시실이 없던 시절 다방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모두 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1980년 대한미술원전 우수작가상, 한·일 오원미술연맹전 은상을 수상한 이력을 필두로, 한국미술협회전, 제주홍익동문회전, 한국 현대미술 단면전, 오늘의 한국 현대미술 동경전, 한국현대미술초대전, 프랑스 국제 아트 페어, 제1회 워싱톤 국제 아트 페어 등수많은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고영우가 화가의 길로 들어선 데는 아버지의 예술적 영향이 크다. 아버지 고성진(高成珍, 1922~ )은 제주미술계의 유학파 1세대로, 1942년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이후 귀국하여 김인지, 김광추 등과 더불어 제주 근대미술 보급에 힘썼다. 그는 고전 음악을 즐겨 들으며 어린 고영우에게 청각장애 등 온갖 역경 속에서도 훌륭한 곡을 만들어낸 베토벤과 같은 음악가의 일생을 들려주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고영우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또 그의 화실은 유학시절 일본에서 가져온 화집과 문학서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고영우는 아버지에게 그림에 관한 설명과 함께 인상파 화가들이 혼신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 등을 들으며 화가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나갔다.

고영우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스케치하는 서귀포 해안을 따라 다니곤 하였다. 아버지가 튜브물감을 짜서 뒷마당의 장미넝쿨을 그리는 모습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보았던, 베레모를 쓰고 문섬을 스케치하던 한 일본화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 고영우, 너의 어두움, 65x53cm, 2002.  
 
# 고영우의 작품세계

2004년 4월 25일 적은 고영우의 작가노트는 고영우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단순한 구도 평면으로 처리되는 색채. 짙은 원색과 밝은 색으로 된 색채에서 과거의 선으로 일변하는 인물에서, 지금은 선을 피해 평면으로 그려 나간다. 이는 내가 지금껏 건강 악화로 얼룩진 내 의식이 자신을 컨트롤 하면서 살아온데 기인한다고 다. 보다 강인하고 끈질기게 살아가기 위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쫓기고 쫓기는 상황에서 지혜를 배웠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내 자신의 건강에 따라 적합하게 작품소재, 방법을 선택하겠다. 진실한 작품은 결코 작가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고영우의 그림들은 대부분 어둡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면 정서적으로 빨리 반응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감정이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 만큼 그는 인간이 벗어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근원적인 인간의 고뇌를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걸러지지 않은 자신의 의식을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고영우가 표현주의에 경도된 이유는 자신이 걸어온 삶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표현주의는 인간의 정서에 감정으로 강하게 호소하는 미술인데, 표현주의가하나의 양식이나 유파라기보다는 감정적인 표현 경향으로서, 보통 두터운 붓자국으로 체계 없이 형태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때로 야수파적인 강한 색채를 사용하기도 하는데예측할 수 없는 의외의 구성력을 보이기도 한다.

고영우는 처음, 자신의 고뇌를 드러내기 위해 중심인물 하나가 화면의 중심으로 떠올리는 작업을 하였다. 그 후 10여 년 전부터는 수직적 인물군상을 그림으로써, 나와 너의 공통된 고뇌를 끌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 다시 그는 인간의 고뇌를 심화시키기 위하여 수직적 인물군상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 고영우, 너의 어두움, 65x53cm, 2002.  
 
고영우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나와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이다. "인간의 내면의 의식은 존재하는 인간 그 자체가 슬프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실체, 근원성, 본질성이 우선한다. 현실의 모든 사람들은 실존적 아픔, 약함, 나약함, 고뇌가 있다." 고영우의 이런 생각들은 실존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실존철학에는 현존재의 근본적인 사실인 불안과 인간의 고독, 그리고 인간존재의 극복 불가능한 비극성에 관한 키에르케고르 사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실존은 인간에게 특유한 존재양식이라는 점에서 실존철학은 '인본주의적'이다. 그리고 실존철학은 언제나 개인의 실존으로서 개별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지만 개인을 고립시켜 고찰하지 않고, 언제나 구체적인 상황에서 인간을 고찰하면서 세계 및 타자와 연관시킨다. 따라서 실존철학에서 보면, 인간은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세계내 존재'이며, '타자와 연결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슈퇴리히, 2008)

고영우의 작품에 존재하는 실존은 자신이지만 개인주의로 존재하는 인간 개인이 아니다. 화면의 실존들은 '세계 내 존재'로 시간의 한계상황에 의해 구속받는 불안하고 허무한 인간 전체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개인과 타자간의 총합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고통은 모든 세계 개인의 고통인데, 그 어떤 개인도 인간의 허무, 외로움, 불안, 나약함을 극복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고통은 세계 인간의 보편적인 고통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모순을 극복할 수 없으며, 존재 자체가 비극인 것이다.
고영우의 <존재, 너의 어두움>은 바로 실존철학의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불안한 심리와 고통을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을 표현하는데 고영우는 왜 표현주의 경향과 격정적이고 강렬한 야수파적인 색채를 택했는지, 한 개인이 아니라 무수한 개인으로 나타나는 군상이 작품에 나타나는지, 고영우의 화가로서의 여정을 생각하면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존재, 너의 어두움>은 너 아닌 나, 나 아닌 너, 나와 너를 포함한 '세계 내 인간의 어두움'이었던 것이다. 고영우의 그림은 진정으로 나와 너의 존재의 비극을 알리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제주대학교박물관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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