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표현과 실제로 형법상의 사기죄에 해당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든다면 언제까지 갚아준다는 약속을 하고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갚지 않으면 사기를 당했다는 일반적인 표현을 하지만 정식으로 사기죄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제반사정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용금에 대한 분쟁은 고소로까지 발전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계약에 대한 치밀한 법적 사고방식의 결여로 인해 계약체결시 갖추어야 할 여러 요식행위를 등한시하는 잘못된 관행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재산분쟁에 따른 문제가 민사재판으로 이어지더라도 그 이전에 형사고소를 하였는지 여부가 원고의 억울함을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로써 채택될 수 있다는 왜곡된 법률지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보겠다.

 그러다 보니 고소사건이 전체형사사건 중에 차지하는 비율이 외국과 비교하여 볼 때 우리의 경우는 상당히 높다. 우리와 유사한 법률문화를 가진 일본과 비교하여도 인구 10만명당 고소 당하는 사람의 비율이 약 45배에 해당한다. 더불어 고소 당하는 경우에는 고소할 때와는 달리 수사기관에 매우 비협조적이기 때문에 인구비례에 따른 기소중지자의 비율도 일본과 비교하여 무려 130배에 이르고 있다. 즉, 이러한 통계는 피고소인이 불리하면 일단 도주하거나 경찰에 출석하지 않아 수사가 종결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고소를 줄이기 위해 고소고발실질심사제도나 고소고발선별입건제도를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고소를 억제하는데는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사소송법이나 민사조정법을 활성화하여 가급적 민사적 성격의 분쟁을 쉽고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현재 우리 제주도의 경우는 지방 경찰청과 도내 2개 경찰서의 조사계 요원들이 1인당 평균 3-40건에 달하는 고소사건에 항시 매달려 있다. 고소는 아니지만 각종 고발, 진정사건까지 합하고, 불시에 다른 업무에 동원되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경찰수사관이 감당할 업무 적정량은 한계수준에 이른 것이다. 경찰서를 찾는 민원인이나 고소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시급하게 사건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지만 경찰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봉사정신을 발휘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고소사건의 처리는 검찰과 경찰에서 주로 하지만 실제로 시민들은 검찰을 찾기보다는 보다 친근한 관할 경찰서에 고소를 접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경미한 사건이라 하여도 고소가 되어 입건된 사건은 수사종결권이 검찰에 있기 때문에 경찰에서는 일단 고소인과 피고소인, 참고인 등을 조사한 후 관계서류와 증거물을 관할 검찰로 송부하는 번잡한 절차를 밟은 후가 아니면 수사를 끝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도 고소사건이 각 경찰서마다 폭주하고 있어도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 여러 가지 비합리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고소인이나 피고소인, 수사관 모두에게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경미한 사건조차 독립된 수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찰의 지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소사건의 경우는 사안이 복잡하거나 고위직이 관련된 중요사건만을 선별하여 검사들이 맡고 경미한 생활범죄나 폭력과 같은 정형적인 사건들은 독자적으로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하여 처리하는 방안을 국민의 인권보장과 편익을 위해 신중하게 검토할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황정익·탐라대 교수·경찰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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