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9일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타자가 본 제주도…’국제심포지엄서 강조
“유럽에서의 인식 및 자료 제한 불구 태평양 해양문명사 중요 위치에 있어”

   
 
   
 
제주도를 한반도 끝 작은 부분이 아닌 태평양을 향한 교두보로 보는 인식 전환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제2회 글로벌 제주상공인대회 일환으로 17~19일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등이 꾸린 ‘타자(他者)가 본 제주도, 그리고 100년의 역사’국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제주도’의 해양지리학적 중요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일제침탈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국제학술대회 중 1세션으로 진행된 이번 심포지엄은 ‘주변국가에서 본 제주도’에 초점이 맞춰졌다.

16~19세기의 동아시아 해양세계와 서구인의 제주도 인식 주제로 발표한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15~19세기 서구인이 본 제주도는 제한적”이라고 전제하고 “표류 등에 의해 대만이나 오키나와 등지로 흘러 들어간 경우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는 했으나 대항해 시대라는 측면에서 제주는 분명한 지정학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의 근거로 주 석좌교수는 1622년 헤셀 게리츠의 태평양 지도 등 항해가들에 의해 작성된 해도 등을 제시했다.

   
 
  ▲ 1622년 헤셀 게리츠의 태평양 지도. 제주도는 물론 우도까지 표시돼 있다  
 
헤셀 게리츠의 태평양지도에는 제주도는 물론 우도까지 명기가 돼 있으며, 특히 1653년 헨드릭 하멜의 표류 이후에는 ‘퀠파트(Quelpart)’란 이름으로 서양에 알려진다.

1660년 헨드릭 돈커의 서태평양지도에서는 제주도와 함께 울릉도와 독도도 표시돼 있는 등 중국 광저우에서 제주도 서북쪽을 지나 한반도 남부의 동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로 향하는 항해로가 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1845년 영국 벨쳐의 ‘사마랑호 탐사항해기’에는 제주도 해도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완전한 측량에 의해 그려진 제주도 해도가 확인되기도 했다.

주 석좌교수는 “해양사적 인식에 초점을 맞출 때 제주도는 무엇보다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며 “아직까지 충분한 자료가 집적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같은 주제로 토론에 나선 이케다 요시후미 류구대 교수는 “유럽의 동아시아 진출 이전에 분명히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타자관’이 형성됐을 것”이라며 “유럽인들이 들어온 이후 자원 이동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사회의 이미지가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이케다 교수는 “제주도 그리고 한반도가 ‘운둔의 왕국’, ‘은둔의 섬’으로 인지된 데는 교역의 중심에 있지 못한 때문이지만 해양문명 발달 과정이나 발굴 유물 등에서 봤을 때 제주인들의 해외 진출이 없었다고 하기 어렵다”며 “표류 이외의 이동 통로 조사를 통해 ‘쓰여지지 않는 역사’에 대한 공공의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이밖에도 ‘탐라기행’ 등 문학자료와 무속·설화·전설 등 다양한 자료들 속에 기록된 ‘제주’를 찾고 그를 통한 해양문명사적 연결고리 등 다양한 연구과제들이 제시됐다.

‘타자…’국제학술대회는 오는 10월 6~7일 ‘제주도(泉 靖一)의 학술적 의의’와 15~17일 ‘아시아-태평양지역 이주와 트랜스내셔널리즘’ 주제 심포지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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