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영 청소년기자]
옛 흔적들 돌아보며 조상들의 기개 떠올리기도

   
 
  ▲ 복원된 제주읍성(오현단 위)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은 흥미롭기만 하다. 오래된 흔적일수록 더욱 그렇다.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흔적을 남긴 옛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 흔적을 찾아가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며 행복한 여행이다.

지난 10월 3일 아빠와 함께 옛 제주 성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유래와 역사를 배우고 옛날 제주성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답사를 하기로 했다.

제주 땅에 살면서 제주성의 범위가 어디까지 인지를 늘 궁금해 했던 나에게 제주성 답사는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이날의 코스는 걸어서 관덕정을 출발하여 제주은행서문지점과 제주YMCA, 제주대병원 서쪽 카센터와 남문로터리를 지나 오현단과 동문파출소, 그리고 제주기상청과 북초등학교를 거쳐 다시 관덕정으로 돌아오는 약 3km의 순서였다.

제주성은 관아를 보호하기 위하여 읍성(邑城)을 쌓았는데, 따라서 제주읍성은 제주목사와 제주판관 등 지방관의 거처인 동시에 명령을 집행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읍성은 행정적인 목적뿐 아니라 군사적인 기능을 수행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평지에 위치한 제주성은 병문천과 산지천을 자연해자로 삼아 쌓았다고 한다. 이렇게 제주 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던 제주성은 한말(韓末)까지 유지되다가 일제강점기인 1910년 읍성철폐령이 내려지면서 훼손되기 시작하여, 북문, 동문, 서문 등의 문루가 먼저 헐리고, 이후 1920년대 후반 성이 헐리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제주성에서 헐려진 돌들은 제주항 축항 공사 때 바다 매립을 위한 골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제주대학병원 서쪽 카센터 옆에 남아있는 제주성의 흔적.  
 
'제주성을 헐어 매립골재로 사용했다고? 설마 그럴 수가….'

일제 강점기에 무참히 짓밟힌 제주성의 비극적인 최후를 들으면서 나는 일제의 만행에 매우 분개하였다.
 답사결과 제주읍성은 제주대학병원 서쪽 카센터와 오현단 동쪽, 그리고 정한APT 건너편 주택과 제주기상대 아래쪽에서만 겨우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나마 과거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 오현단 동쪽 산지천과 접해있는 성곽에 올라보니 탐라국 때부터 제주를 지키는 '방어벽'으로 터를 잡았던 제주성의 윤곽을 어슴푸레 짐작할 수 있었다. 허물어져 가는 옛 성터가 초라해 보였지만 튼튼한 성을 쌓아 외적의 침입을 막으려 했던 조상들의 기개를 떠올리며 위안을 삼았다.

제주성을 다녀보니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라는 옛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성 안에는 뜻있게 살다간 조상들의 진한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키워낸 진주 같은 역사의 향기가 오롯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번 답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 못지않게 아득히 잊혔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방의 섬 제주에서 이방인 아닌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던 제주인들, 그분들의 정신과 치열한 삶의 흔적을 더듬으며 찾아보았던 이번 답사는 살아 있는 역사기행이자 제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제주교대부초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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