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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아버지가 광주서 학살당한 것을 알았습니다"[온현장] 광주지역 4.3 유적지 순례
김용현 기자
입력 2010-11-07 (일) 16:38:22 | 승인 2010-11-07 (일) 16:38:22

 

   
 
   4.3도민연대와 유가족들은 6~7일 광주형무소 옛터와 학살터 등 광주지역 4.3 유적을 순례를 했으며, 6일 학살터인 불공고개에서 진혼제를 열고 4.3희생자의 넋을 위문했다. 광주=김용현 기자  
 
4.3도민연대와 유가족 6~7일 광주형무소터 및 학살현장 순례
4.3 당시 광주형무소 끌려간 희생자를 위한 진혼제 열어 위문

 

"아버님이 장염으로 숨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60년이 지나서야 외딴 곳에서 처참하게 학살되신 사실을 확인하게 되니 너무 억울합니다"

신상현 할아버지(76. 한림읍 대림리)의 아버지(신찬희, 당시 33세)는 당시 제주세무서직원으로 근무중 1948년 토벌대에 의해 연행됐고, 1951년 8월14일 광주형무소에서장염으로 사망했다고 통보가 전해졌다.

하지만 신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사망통보서가 조작된 것이며 헌병대에 의해 학살된 사실을 지난 6일, 아버지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지역 학살터를 방문해서야 알게 됐다.

제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공동대표 김평담, 김용범, 윤춘광, 양동윤)는 4.3 당시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집단학살을 당하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고, 넋을 위문하기 위해 광주형무소터를 비롯한 광주지역 학살터를 6~7일 순례했다.

특히 4.3도민연대가 4.3당시 전국의 형무소 끌려갔다 희생된 3000여명의 제주도민들을 위로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전국 4.3유적지 순례를 2000년부터 시작했으며, 이번 11차 광주지역 순례로 모든 여정을 마무리했다.

   
 
  4.3도민연대와 유가족들은 6~7일 광주형무소 옛터를 방문해 4.3으로 인해 광주형무소에 끌러간 희생자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광주=김용현 기자  
 
순례단은 6일 광주지역 순례에 첫 방문지로 옛 광주형무소 옛터(광주시 동구 동명동 200번지 일대)를 찾았다. 광주형무소에는 4.3 당시 200명의 제주도민이 수감됐었다고 추정하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대량학살 등으로 인해 행방불명됐고 2명만이 목숨을 구했다.

4.3원령들의 한이 맺힌 곳이지만 주택개발로 광주형무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정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4.3으로 인해 광주형무소에 끌려온 수형자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구봉 기슭을 순례단들이 찾았지만 주변은 개발돼 골목으로만 남았다. 광주=김용현 기자  
 
광주시 북구 양단동에 위치한 장구봉. 장구봉 등성이는 광주형무소 수형자들이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헌병대에 의해 집단학살을 당한 후 매장된 곳이다. 당시 100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4.3때 끌려온 도민들도 희생된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하지만 장구봉 학살터는 1979년 전후로 마을생기며 주택이 들어서며 당시 학살흔적은 사라졌다. 순례단은 표비석도 없이 초라한 골목길로 변한 학살현장을 거닐며 슬프고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순례단은 또 다른 학살터인 광주시 북구 운안동 불공고개를 향했다. 불공고개는 장구봉과 함께 제주도민이 학살당한 가능성이 높은 곳이며, 당시 광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형자들이 희생된 곳으로 확인된 곳이다.

   
 
  순례단들은 4.3 수형자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학살터인 불공고개에서 145위와 무명신위를 놓고 진혼제를 열어 억울한 넋을 위문했다. 광주=김용현 기자  
 
불공고개 주변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순례단은 불공고개에서 수형자명단으로 확인된 145명의 신위와 무명신위를 모시고 진혼제를 올렸다.

유가족들은 제주서 준비한 제물과 음식을 정성스레 차려놓고, 60년이 흘러 가족이 희생된 현장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며 억울한 혼을 위로했다.

윤춘광 4.3도민연대가 145명의 신위를 부르는 순간 학살터 주변은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장정언 제주 4.3평화재단 이사장(이성찬 상임이사 대독)은 추도사를 통해 "이억만리 타향에서 억울하게 희생됐고, 육신마저 가족들에게 안기지 못한 한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냐"며 "앞으로 4.3당시 행방불명희생의 전모가 드러나고 역사적 진실이 복원되는 날이 반드시 찾아 올 것"이라고 위문했다.

강우춘 할아버지(64.애월읍 유수암리)의 아버지(강용구 당시 31세)는 1948년 대동청년단에 편성돼 신엄지서 경비업무 중 지서에 불이나자 방화범으로 누명을 받고 광주형무소에 수감됐고, 한국전쟁발발후 행방불명 됐다.

강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광주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이후 현재까지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했고, 60년이 지나 희생현장을 방문해 제를 지내 너무 죄송스럽다"며 "혹시나 유해라도 찾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학살터가 주택 등으로 개발되면서 그 희망도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양동윤 4.3연대 공동대표는 "이번 광주지역 방문을 끝으로 11년간 이어온 전국 4.3유적지 순례는 마무리가 된다"며 "하지만 광주을 비롯한 전국순례를 통해 4.3진상규명의 조각조각을 모을 수 있었고, 이 성과가 완전한 4.3해결에 접목될 수 있도록 도민들의 큰 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순례단은 7일에도 광주형무소 수형자와 보도연맹 학살터인 광주시 대촌면 한톳재와 학동 밀양동고개, 석곡면 도봉고개와 국립 5.18묘지를 찾아 당시 억울한 희생자를 위문했다. 광주=김용현 기자

김용현 기자  noltang@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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