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하자는 논의가 줄을 잇고 있다.그런 생각은 도당국 보다는 관련 단체나 전문가들에 의해서 주로 제기되고 있으며,언론이 뒷받침하고 있다.이러한 논의는 아마도 남북회담 이후 북한 당국자들이 회담 장소로 제주를 꼽고 남북 교차 관광까지 이야기 나오는 최근의 화해 무드와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제주도를 평화스러운 섬으로 대내외에 알리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오히려 찬성할 만한 좋은 일이다.게다가 국제 기구를 유치해와야 한다든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동시에 선포하자든가 하는 논의도 좋다.그러나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부르고 싶어도 무엇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겠는가.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른 어떤 지역 보다도 제주도가 평화라는 이미지에 걸맞는 섬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평화의 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주도민들은 그동안 과연 얼마나 평화를 위해 노력해 왔는가? 선포하는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결코 지금 할 일이 아니다.그보다는 먼저 그동안 제주도민들이 한국 사회 내에서,그리고 세계를 상대로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었는지를 되짚어 보고 정리해 보는 작업이 앞서야 할 것이다.내일 당장 우리가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라고 선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 정말 제주도는 그럴 만한 섬이다."라고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난 해 말 통과된 4·3특별법이야말로 전도민의 염원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라고 본다.그리고 4·3의 아픈 역사를 올바로 치유해나가는 제주도민들의 노력이야 말로 평화를 위한 가장 적극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4·3은 우리 제주도민,나아가 한국민들의 현대사 속에서 가장 뼈아픈 기억에 속하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짐이다.우리들은 아직 이 짐을 벗지 못하고 있다.4·3의 진상을 규명하고,나아가 희생자들을 위령하는 일은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있었던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직접 확인하고,나아가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4·3추모제를 전국민이 주목하는 행사로 승화시키고,위령 사업으로 평화 공원을 조성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 기념관을 세운다면,제주인들이 진정 바라는 평화가 어떤 것인지를 충분히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를 보여주는 평화 공원이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명소임을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또 전세계적으로 유태인 학살 현장을 보존해 평화 교육의 순례지로 만드는 유럽인들의 노력을 주목해야 한다.

 제주인의 입장에서도 아픈 기억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4·3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4·3 추모제를 전도민이 관심을 갖는 엄숙한 제의로 승화시키고,4·3의 현장을 중심으로 위령탑을 건립하고 기념관을 세워 산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그리고 이를 전국에,전세계에 알려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참극을 딛고 일어서는 제주인들이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또한 알뜨르 지역을 정비해서 이를 통해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군의 당시 모습과 전쟁 때문에 고통당하던 제주인의 삶, 6·25전쟁의 현장 등을 느낄 수 있는 순례 코스로 삼아야 한다.이런 역사 현장과 추모제를 통해 최근 도당국이 즐겨 강조하는 '평화의 섬' 이미지의 내용을 채워야 하며,제주야말로 전국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연 경치를 감상하면서 동시에 엄숙하게 역사 현장을 찾는 순례자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그럴 때 비로소 제주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아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조성윤·제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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