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의 이력은 화려하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4연패, 세계기록 보유자 등 그녀의 이름 석자에는 수많은 타이틀들이 붙어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장미란에게 없는 타이틀이 있다. 바로 아시안게임이었다.

장미란이 19일 마침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삼세판 만에 낸 승부였다. 원주 상지여중에 다니던 1999년, 장미란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아버지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가 바벨을 들기 시작한 장미란이 역도 인생 11년만에 챙겨낸 아시안게임 타이틀이었다.

바벨을 잡은지 3년도 채 안되 태극마크를 단 장미란에게 2002년 도하 아시안게임은 사실상 첫 국제무대 데뷔전이었다. 이 대회에서 장미란은 당시 여자 최중량급의 세계 최강자였던 탕공홍(중국)에 밀려 2위를 했다. 그러나 당시 부산 대회에서 따낸 은메달은 세계 역도의 판도를 바꿀, ‘새 별’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탕공홍과의 접전 끝에 아쉬운 은메달을 따낸 장미란은 2005년 세계선수권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며 2인자 자리를 박차고 세계 챔피언을 접수했다. 당시 장미란에게 우승을 내준 선수는 탕공홍과 세대교체돼 중국 역도계의 기대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무솽솽이었다.

장미란은 2005년에 이어 2006년 9월에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도 무솽솽을 제치고 대회 2연패에 성공하며 3개월 뒤인 12월에 열리는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전망을 밝혔다. 그러나 도하 대회 결과는 달랐다. 당시 장미란은 317kg을 든 무솽솽보다 4kg 가벼운 313kg을 들며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

이후 4년을 기다렸다. 그 사이 장미란은 무려 6번이나 세계기록을 갈아치웠고 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4연패 등을 일궈내며 세계 여자 역도를 평정했다. 그리고 마지막 ‘타이틀 매치’였던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빛 바벨을 들어올리며 그랜드슬램으로 세계 역도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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