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출격이었다. 분명 벤치에 앉아있어야 할 하은주가 코트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여자농구 대표팀의 최장신 센터 하은주(202cm)는 지난 21일 오른 발목 인대를 다쳤다. 치료부터 재활까지 3주가 예상됐다. 광저우에서 조기 귀국을 검토했던 하은주였다.

그러나 하은주는 24일 광저우 스포츠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일본과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4강전 시작에 앞서 선수들과 함께 몸을 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다.

지난 사흘간 치료에 매달려온 하은주는 이날 일본전을 앞두고 임달식 감독에게 “뛸 수 있다”며 출전을 자청, 18분26초 동안 코트를 누비며 19점 6리바운드의 탄탄한 활약으로 한국의 93-78 승리를 주도해냈다.

하은주가 코트로 나선 것은 24-22로 한국이 근소하게 앞선 2쿼터 시작 휘슬이 울리면서부터 였다. 하은주는 코트에 나오자마자 손쉬운 골밑슛을 놓쳐 우려를 낳았지만 두 번 실수는 하지 않았다. 곧이은 찬스에서 골밑슛을 성공시켰고 이어 상대의 공격시 수비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등 존재감을 보여줬다. 일본의 최장신 선수 마미야 유키가 하은주를 상대로 찰거머리 수비를 펼쳤으나 하은주보다 한 뼘이나 작은 184cm의 유키가 막아내기에 하은주는 너무 거대했다.

더욱이 하은주가 코트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일본 선수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선일여중 3학년 시절 일본으로 유학간 하은주는 고교 졸업 후 일본 프로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 일본에 귀화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귀화 직후에는 일본농구협회로부터 대표팀에 합류하라는 끈질긴 러브콜을 받았고, 수 차례의 거절 끝에 하은주는 결국 귀화 3년만에 국적복귀로 한국에 돌아왔다. 일본 대표선수들이 하은주의 존재를 잘 알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하은주 투입 이후에도 한국은 좀처럼 도망가지 못했다. 스피드를 앞세워 빠른 공수전환으로 공격을 전개한 일본을 막아서다 연거푸 자유투를 허용하는 등 신장의 우위를 살리지 못했다. 더욱이 하은주를 휴식없이 계속 기용할 수는 없었다. 32-30으로 앞선 2쿼터 5분께 임달식 감독은 하은주를 불러들였다.

이후 한국은 2쿼터 종료 직전 정선화의 골밑슛에 이은 변연하의 3점슛이 림을 가르며 전반을 41-34로 마쳐 한숨을 돌렸다. 3쿼터 시작과 함께 하은주가 다시 나왔다. 하은주는 골밑슛으로 3쿼터 첫 득점을 가져오며 7점이었던 점수차를 9점으로 벌려냈다.

하은주가 버틴 골밑을 일본은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다. 그사이 한국은 외곽이 폭발하면서 3쿼터 5분께 57-43까지 도망갔고 임 감독은 다시 하은주 불러들였다.

하은주는 4쿼터 중반, 다시 한국이 추격 당하자 긴급수혈됐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탄탄한 골밑 활약을 펼쳐보이며 승리를 지켜냈다. 이로써 한국은 결승 진출을 확정,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노메달에 그친 아픔을 확실하게 털어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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