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뿌리는 다름 아닌 언어다. 언어를 가짐으로써 사람들은 생각하며 의사를 나누고, 공감을 이룰 뿐 아니라 사물을 판단하고 기억한다. 그래서 다름 아닌 언어가 인간역사의 원동력이 된다.

 일찍 범부 김정설은 "언어란 의사의 표현이니 모든 사람의 용어는 곧 사람의 사상이다. 언어란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생각이다. 관념이나 사유를 빼어 놓고 말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늘의 중국 동북부라면 많은 부족·민족의 각축장이었다. 대흥안령산맥 언저리의 초원을 근거한 선비·거란·몽골 등 동호계, 그 남에 흐르는 목단강 유역에서 살았던 읍루 ·말갈·여진 등 만족계,송화강 중류의 부여 예맥, 압록강변의 고구려·숙신·예맥계가 합작한 고조선계가 엉키며 흥망·성쇄를 거듭한 땅.

 고조선 예맥계는 한반도의 후속 나라들로 이어져 온다 치고, 만족계의 청까지의 북방 세력들은 흥망을 거듭하며 차례로 사라져 갔다. 결과는 그 대평원에서 살아남아 21세기의 약진을 다짐하는 민족은 부여 예맥의 후사인 한민족뿐이다.

 다른 지역처럼 한반도도 한동안 원의 세력 아래 있었지만, 그들의 힘이 쇄해 멸망하니 한반도에서는 몽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정복국가가 지나간 길에는 풀도 나지 않는 다던가. 한때 한국인들이 아침에 사람을 만나면 "어데 가십니까"고 말을 건넸었다. 이런 인사법은, 몽골인들이 아침에 말을 타고 목초지를 달리다가 기마인을 만나면 "어데 가십니까"고 묻는 이사법과 비슷했다. 지금도 제주도에 '조랑말'이 남아 있는지 모르나, 한국인은 작은 말을 '조랑말'이라 불렀다. 그 말의 계통과 이름이 몽골일 듯 하다. 실인즉 몽골인은 그들의 말을 '조랑'이라 불렀다.

 지구상에서 일본인이 자국어로 상거래를 할 수 있는 하나의 고장은 한반도라 한다. 세월이 가며 그런 사정도 달라진다. 일어를 알아 듣고 말하는 반도인의 세대가 늙어 사라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일인은 이 땅에서 한때나마 우격다짐으로 일어 '상용'을 강요했고 인륜을 거슬러 '창씨개명'까지 저질렀으니, 한인의 반감과 원한이 사무쳐 적개심만 뿌리깊다. 그래서 일본은 가까우면서 먼 이웃이 되었다.

 하기는 일제 때 새로 획득한 영토를 엮는 정치통합을 위해 일본에게 강압적 언어동화책을 훈수한 외국 지성이 있었다. 독일의 생의 철학자 에드바르트 슈프랑거가 그 사람인 데, 그는 일본 열도의 '제국대학'을 돌며 학술강연을 하면서 서울에서도 그의 눈먼 문화철학을 강했겠다.

 이 땅에서 일본의 반인륜적 언어말살책은 도리어 한인들의 민족신생을 위한 각성과 운동에 기름을 붓는 셈이었다. 망국은 반도인에게 민족신생운동에 불을 당겨 사회 각 분야에서 새 의식과 각오로 민족 르네상스운동이 타올랐다. 물론 만주 중국 러시아 미국 등 나라 밖에서 벌어진 독립투쟁과 병행해서 말이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세기 초의 망국에서 중간에 해방,분단,전란을 치르면서도 경제개발 선진국클럽 가입이라는 대업을 세기 말에 이루어 냈다. 

 예부터 이 땅에는 두 정신적 흐름이 있었다. 인도에서 불교 문학 형의상학 의학 등 심오한 정신이 흘러들고, 중국에서 윤리 법제 건축 양생 등 풍부한 사회문화가 들어 왔다. 그런 자원을 흡수하여 반도인은 이미 삼국시대에 '문명'의 광채를 발할 수 있었다.

 고려 때 활자인쇄술로 빛을 발한 한반도에서 21세기에는 표음문자를 구사하는 한국인이 정보기술에서 큰 도약을 이루고 있다. 표의문자를 가르쳐준 중국에 표음문자를 몸에 익힌 한국인의 두뇌와 기술이 앞선 새 정보기술로 중국에 지적 부채를 갚을 절호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중국이 거대 이동통신 시장에 CDMA 기술표준을 도입하기로 결정을 봄에 따라, 우리 장비업체가 이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삼으려 한다. 

 어디서나 문명법칙의 첫째는 자기언어를 갖지 않는 민족은 정신적으로 또 영혼의 깊이에서 역사발전의 능력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고부터 한민족은 우리말로 남다른 정신적-지적 생활을 가지며 빛나는 역사를 창조해 왔다. 그리고 상징문자와 다른 소리글자를 만들어 정신 또 사회적으로 활달한 한국문화를 지어왔다. 한국인의 두뇌의 특징은 인쇄술·전파 등에서 남다른 자질을 발휘했다. 이제부터는 우리 말과 글이 더욱 빛나는 정보기술을 일궈 동아시아에서 크게 이바지 하리라는 것이다.<김용구·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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