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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최대 참사…방치된 위령탑(와이드) 잊혀진 죽음 남영호 침몰 40주년
김동은 기자
입력 2010-12-16 (목) 10:11:17 | 승인 2010-12-16 (목) 10:11:17

   
 
  ▲ 서귀로시 영천동에 세워진 남영호 위령탑이 관리가 되지 않은채 방치돼 있다.  
 
1970년 선박 침몰 326명 목숨 앗아가
위령탑 관리 손 놔…경각심 일깨워야

승객 326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 남영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올해로 40돌을 맞았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방치된 위령탑처럼 세월이 지나면서 도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40돌을 맞은 남영호 침몰 사고를 어떻게 보존하고 기억해야하는지 앞으로 과제도 산적하다.     

△어떤 사고였나

지난 1970년 12월 14일 오후 남영호가 서귀포항에서 부산으로 출항했다. 당시 남영호에는 승객 338명이 탑승했으며 감귤 등 각종 짐들이 가득 적재돼 있었다.

남영호는 여객정원이 302명이었지만 36명을 더 태웠다. 화물 역시 정량 150t을 초과해 2∼3배나 많은 짐을 싣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항할 것 같던 선체는 출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해졌다. 15일 오전 1시15분께 대마도 남쪽 100㎞ 지점을 항해하던 남영호의 선체가 갑자기 기우뚱거렸다. 쌓여있던 감귤 상자들이 무너져 내리며 내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복원력을 잃은 남영호의 선체는 급속도로 한쪽으로 기울더니 35분이 지나자 완전히 뒤집혔다.

이날 사고는 당시 사고 현장 부근을 순찰하던 일본 해상 보안순시선 구사사카마루호가 사고 현장을 확인, 일본 해상보안청에 보고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얼음처럼 차가운 바다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사람은 달랑 12명. 바다는 승객 326명을 집어 삼켰다.

△잊혀진 참사 

남영호 침몰 사고는 해방 이래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대형 참사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남영호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남영호 참사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은 서귀포시 영천동 남영호 위령탑이 전부지만 이곳은 사실상 방치된 상황이다. 

위령탑은 찾기조차 어려웠으며 겨우 방문한 위령탑 입구는 잡풀이 무성해 이곳이 326명의 넋을 위로하는 곳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입구는 잡풀이 가득한데다 부식되고 노후됐으며 위령탑 역시 제 빛깔을 잃었다.

행정에서도 무관심하긴 마찬가지다. 사유시설이라는 이유로 행정에서 거의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40년의 지나면서 고령이 된 유족들은 수년전부터 서귀포시에서 관리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행정에서는 여전히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70대가 된 한 유족은 "우리 어머니도 이날 사고로 돌아가셨다. 시간이 지났지만 지역의 대사건이 이렇게 잊혀지는게 너무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활용방안 마련돼야

남영호 침몰 사고를 후세대에서 기억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대형사건'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고의 경각심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시 사고 원인이 무리한 과적, 미흡한 선박 점검 체계, 부실한 대응 등이 복합적으로 발생한 '인재'인 만큼 사고 예방 및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역사적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위령탑을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해 그동안 지원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종합적 검토 등을 통해 효과적인 활용 방안 등을 고심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kde@jemin.com

김동은 기자  kdeun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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