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록을 폄하하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서장훈(36·인천 전자랜드)이 프로농구 역사에 새로운 금자탑을 쌓았다. 지난 25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창원 LG와 원정경기에서 20점을 올려 1만2,000득점 고지(통산 1만2,014점)를 넘어섰고 팀 승리에도 기여했다.

한 시즌에 54경기가 치러지는 프로농구에서 전 경기에 출장해 평균 20점을 기록해야 1,080점이 쌓인다. 그렇게 부상없이 11시즌 이상 꾸준히 뛰어야 도달할 수 있는 기록이 바로 1만2,000점이다.

서장훈은 1998-1999시즌 데뷔한 후 7년 연속 평균 20점 이상을 기록했고 그 중 4차례나 '20-10(득점-리바운드)'을 달성했다. 프로농구 역사상 시즌 '20-10'을 단 한 번이라도 달성한 국내 선수는 서장훈이 유일하다. 외국인선수가 2명씩 출전해 골밑을 지배하던 시기, 그들과 매치업하고 맞서 공격을 이끌었던 '토종' 센터다.

서장훈의 득점력은 변함없이 건재하다. 올 시즌 득점랭킹 12위에 올라있다. 국내 선수로는 문태영(창원 LG), 김효범(서울 SK), 문태종(전자랜드)에 이어 4위. 현역 중 세번째로 나이가 많은 베테랑이지만 30대 중반이 넘어선 선수 중 유일하게 선발로 출전 중이고 여전히 탄탄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서장훈의 통산 최다득점 신기록 행진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껏 쌓아온 숫자만 해도 쉽게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역대 2위는 문경은(9,347점) SK 2군 감독이나 현재 코트를 떠나있고 3위는 서장훈과 동갑인 전주 KCC 추승균(9,237점)으로 역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나마 1만2,000득점 고지를 밟을만한 선수로는 통산 8위에 올라있는 원주 동부의 김주성(6,618)이 손꼽히나 향후 5시즌동안 부상없이 꾸준히 평균 20점 정도를 기록해야 근접이 가능하다. 김주성의 통산 평균득점은 16.3점이다.

그만큼 대단한 기록을 달성한 서장훈이지만 LG전이 끝나고 방송 인터뷰에서 통산 득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머리 속이 복잡하다고 했다. 소중한 기록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요즘 들려오는 주위 이야기에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득점 욕심이 지나치다, 기록만 챙긴다는 일부의 편견에 지친 듯한 인상이었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달성했다면 더 빛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봤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서장훈은 올 시즌 경기당 28분을 뛰어 평균 16.7점을 기록 중이다. 야투 성공률은 52.4%로 리그 16위, 국내 선수 중에서는 7위에 올라있다. 여전히 효율적인 스코어러다.

전자랜드는 공격 옵션이 많은 팀이다. 그런데도 서장훈에게 슛 기회가 자주 돌아가는 것은 대다수의 구단이 국내 선수로 하여금 서장훈을 막게 해 미스매치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팀 입장에서 확률을 따졌을 때 미스매치가 되는 포지션을 공략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장훈의 득점은 4쿼터 이전까지 편중될 때가 많다. 여기에도 이유는 있다. 전자랜드에서는 문태종이 해결사로 자리매김했다. 평균 17.5점을 기록 중인 문태종은 자신의 득점 중 무려 42%에 해당하는 평균 7.5점을 4쿼터 이후(연장전 포함)에 쏟아부었다. 선택과 집중이다. 전자랜드는 득점력은 출중하나 체력이 왕성하지 않은 문태종을 승부처에서 집중적으로 활용할 때가 많다.

그 전까지 공격을 이끄는 역할은 주로 서장훈과 허버트 힐이 맡는다. LG와의 시즌 1차전이 좋은 예다. 서장훈은 문태종이 침묵한 전반에만 21점을 몰아넣었다. 문태종은 4쿼터에서 13점을 집중시켰다. 스포트라이트는 4쿼터 대활약으로 동생 문태영에 판정승을 거둔 문태종에게 돌아갔지만 서장훈은 팀 승리의 숨은 공신이었다.

지금껏 쌓아온 기록은 물론이고 올 시즌 그의 득점력을 따져봐도 적중률을 함께 감안했을 때 그저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숫자는 분명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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