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2> 4·3취재반 출범②

   
 
  4·3 진실찾기에 나섰다가 고초를 겪은 사람들. 사진 왼쪽부터 제주신보 전무 신두방, 제주대 학생 이문교와 박경구, 소설가 현기영, 시인 이산하  
 

구속·고문 잇따라…교과서엔 "공산폭동"
연일 가위눌림…침대서 떨어진 후 결단

4·3취재반 출범 ②

수많은 도민이 살해되거나 형무소에 갇히는 희생을 치르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4·3은 연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10년 이상 어둠에 갇혀버렸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국회와 제주 지역에서 진상규명 작업이 시도되면서 4·3은 잠시 햇빛을 쐬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5·16쿠데타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 일에 앞장섰던 제주신보 신두방 전무와 제주대 '4·3사건 진상규명동지회' 회원 이문교·박경구가 전격 구속됐다. 경찰은 '백조일손 위령비'를 부수어 땅속에 묻어 버렸다. 4·3을 땅속에 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1978년 소설가 현기영이 북촌학살사건을 다룬 단편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했다. 작가는 4·3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그 이유로 군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소설은 곧 판금 조치됐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7년에도 시인 이산하가 4·3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했다가 출판사 대표와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제주대학교에서 4월 3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대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던 시절이었다.

그 뿐인가.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제주도 폭동사건은 북한 공산당의 사주 아래 제주도에서 공산무장폭도가 봉기하여, 국정을 위협하고 질서를 무너뜨렸던 남한 교란작전의 하나."라고 버젓이 쓰여 있었다. 북한의 지령에 의한 공산폭동이란 것이다.

제주신문 4·3취재반이 결성된 1988년 3월은 봄이었지만 4·3은 여전히 딱딱하고 차가운 얼음처럼 동결된 상태였다. 6월항쟁으로 달궈진 민주화 열기도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한풀 꺾였다. 야권 3김의 분열로 36.5%의 낮은 득표를 하고도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노태우정권은 직선 대통령으로 뽑혔지만 군사정권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기자라 해서 예외일 수 없는 공안정국 하에서 4·3취재반장을 맡았으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무렵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연재 시점이었다. 취재반을 결성할 무렵 얘기된 기획 시점은 한 달 후인 4월 3일이었다. 그러나 4·3이란 무게감 있는 대하기획 연재를 한 달 만에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초조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 마흔인 나는 사라봉 앞쪽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닥치는대로 모아지는 4·3자료들을 집에 들고 가 끙끙거렸다. 며칠 지나지 않아 집안 공기가 싸늘해졌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바람에 온 식구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방을 바꾸기로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남매에게 안방을 쓰게 하고, 나는 아이 공부방을 쓰기로 했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퇴근 후 일찍 잠자리에 들고, 대신 새벽에 일어나 자료들과 씨름했다.

"'빨간 줄' 한 줄이면 인생 망친다."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자료를 검토해 나갔지만 심적 갈등은 계속됐다. 어느 날 밤이었다. 잠을 자는데, 누군가 나의 목을 누르기 시작했다.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그런가보다 하면서도 결심이 서지 않았다. 가위눌리는 밤이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은 침대까지 흔들어댔다.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 침대에서 떨어졌다. 꿈이었다. 난생 처음 침대에서 떨어진 것은 실제 상황이었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순간 "하겠다!"고 소리친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 길로 내가 다니던 교회(중앙감리교회)에 가서 바닥에 엎드렸다. 옆도 안 보고, 뒤도 안 보고 앞만 보고 달려갈 테니 도와 달라는 절실한 기도를 했다. 내가 결심을 하자 가위눌림은 사라졌다.

4·3영령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 것 같다. 이후 4·3영령과의 만남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 일화는 앞으로 차차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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