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은 연갤러리 실장

   
 
  송정은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 뚜껑을 열기 전까지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말이 이처럼 생생하게 다가온 적은 없던 것 같다.

새해를 맞아 아트 프리마켓을 기획하면서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누구나 편하게 갤러리에 들러 예술작품과 만나고 '착한'가격에 집안에 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얼마나 호응을 얻을 지는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통큰 전시'는 시작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전시 개막 전부터 하나 둘 늘기 시작한 관람객들은 이내 손이 부족할 정도로 늘었고, 일부 작품에는 이내 '판매'표시가 붙여졌다.

'작품을 알아보는 소수를 위한'이 아니라 '문화 예술을 즐기고픈 누구나'와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몇몇 작가들은 아예 도우미를 자청하며 며칠씩 갤러리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자신들의 작품을 보고 좋아하며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습에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직접 작품 기획 의도를 설명할 수 있고, 누군가의 특별한 공간을 채우는 기분 좋은 상상까지 보태졌으니 그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리라.

아트마켓에 '전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가능한 작가들을 배려한 결정이었다. 일반에 비해 20~50%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판매하는데 대해 저항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일부 작가들은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미술시장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에 열악한 지역 현실에서 전업작가의 활동범위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런 형태의 아트마켓은 이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세상과 소통시키는 창구 역할을 한다.

현장 판매가 지역 에술인들의 창작의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묻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아트마켓 현장에서 만난 젊은 작가들의 표정은 보태지도 덜지도 않은 정답이라 생각된다.

관광차 제주에 왔다는 한 관람객이 던진 말은 새로운 숙제가 됐다. 이왕 제주에 왔는데 갤러리 공간에서도 제주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에 다음 기획 아이템이 뇌리를 스쳤다. 이번은 갤러리 차원의 첫 아트마켓이라 보다 대중적이고 인지도가 높은 작가의 작품을 전면에 내놨지만 조금씩 이런 분위기가 익숙해지면 제주를 품어내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으로 아트마켓을 꾸려볼 생각이다.

지역에도 하나 둘 전시공간이 늘고 있다. 그만큼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늘고 있다는 말이다. 작은 갤러리들이 힘을 보탠다면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아트마켓을 키울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해본다. 솔직히 가능하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송정은 연갤러리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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