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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차원 도내 최고(最古) 추정 비석 발견군위오씨 입도시조묘역 정비과정서 1674년 제작 비석 확인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등 비문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어
고 미 기자
입력 2011-02-20 (일) 17:24:45 | 승인 2011-02-20 (일) 17:24:45

   
 
  ▲ 민간 차원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이 발견됐다. 1674년 것으로 확인된 비석 옆면에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비석에는 또 비를 세운 후손인 명윤(命胤)의 이름도 적혀있다.  
 
민간 차원의 것으로 도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이 발견됐다.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대수산봉에 위치한 군위오씨 입도 시조(나주영장 통정대부 오석현·羅州營將 通政大夫 吳碩賢)의 묘역(군위오씨 입도조 영역·軍威吳氏 入島祖 瑩域)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1674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이 나왔다.

현재 군위 오씨 입도 시조의 묘역은 조선 초기 모습 대신 일제시대 도굴 등의 위험을 피해 봉분을 쌓은 형태로 남아있다.

이번 발견된 비석은 입도 시조 봉분에 세워진 비석을 옮기는 과정에서 비문에 이전 만들었던 비석을 산담 시문(죽어서도 망자의 혼령이 집으로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출입문) 아래 묻었다는 기록을 확인하면서 세상 빛을 봤다.

입도 시조 묘소에는 이번 발견된 비석을 포함, 묻혀있던 비석의 존재를 기록한 두 번째 비석(광무 15년 기원후 을묘년)과 이후 만들어진 것까지 총 세 개의 비석이 확인됐다.

   
 
  ▲ 관련 연구자들이 20일 비문 확인을 위해 탁본을 하고 있다.  
 
첫 비석에는 입도조부터 3대까지의 이름과 그 부인의 성씨, 무덤의 위치 등이 상세히 기록됐다. 특히 제주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란 글씨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는 병자호란(1636) 이후 중국() 연원을 쓰도록 했으나 명나라 사대는 해도 청나라 사대는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조선국(朝鮮國)’ 또는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으로 썼던 당시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비석이 땅에 묻힌 것은 일제시대 도굴을 피해 봉분을 쌓는 과정에서 일본식 연호인 소화(昭和) 정축년 10(1935)’을 추각(추기)했기 때문이다.

입도 15대손인 한학자 소농 오문복 선생(74)입도조가 세조 때 관운 등을 피해 제주에 들어오게 된 상황이나 의미가 큰 첫 비석을 땅에 묻게 된 사연 등이 다 비석에 새겨져있다이를 제대로 찾아내 보존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제주 기록문화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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