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5> 오라리 방화 추적기 ③

   
 
  4·3 진압작전의 주역인 군정장관 딘 소장(왼쪽)과 제주도 군정관 맨스필드 중령. 미군정시절 딘 장군은 국무총리 역할을, 맨스필드 중령은 일제시대 도사(島司)와 같은 제주도 최고 책임자 역할을 했다.  
 

영화 제작도 강경진압 선전용으로 활용
4·3취재 깊어갈수록 미군 연관성 드러나

오라리 방화 추적기 ③
오라리 마을 주민들이 방화범으로 지목한 대동청년단 단원 박 아무개는 제주시 이도2동에 살고 있었다. 칠십대 초반의 건장한 체구를 갖고 있었다. 그는 본래 오라리 출신이었다.

그는 4·3취재반과의 첫 만남에서 1948년 5월 1일 대청 단원 부인인 강공부 여인의 시신을 경찰 트럭에 싣고 오라리 인근 장지에 갔던 일, 그 트럭에는 경찰관과 서청·대청 단원 등 30여명이 동승한 사실, 장례가 끝난 후 경찰트럭에 경찰관만 타고 철수하고 서청·대청 단원들이 현지에 남게 된 일 등은 시인했다. 그러나 방화 사실만은 부인했다.

그러나 두번째 만남에서 취재반이 반증자료를 제시하고 목격자들이 대질 증언이라도 하겠다고 한다는 말을 전하자 그는 그때야 비로소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하면 그렇게 했다고 합시다"는 표현으로 방화 사실을 시인했다.

방화 이후의 그의 행적이 놀라웠다. 그는 방화사건 다음날인 5월 2일 제주읍내에서 9연대 조사반에 의해 연행되어 모슬포 연대본부 영창에 감금되었다. 오라리 현장을 직접 조사한 김익렬 연대장의 특별지시로 검거된 것이다. 그의 죄목은 '방화' 혐의였다.

그런데 그는 얼마 없어서 후임 연대장의 손에 의해 풀려 나왔다. 즉 딘 장군은 5월 6일 김익렬 연대장을 전격 해임하고, 그 후임 9연대장으로 박진경 중령을 임명했는데, 박 연대장이 풀어준 것이다.

군 영창에서 22일간 구금생활을 하던 어느 날 밤 박진경 중령이 직접 찾아와 몇 마디 질문을 한 뒤 자신을 석방시켰다는 것이 그가 취재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구금기간 동안 대청 본부 등에서 구명운동을 벌였다는 사실도 그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그가 경찰관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1948년 9월 15일 제주경찰학교 제9기생으로 입교한 뒤 경찰제복을 입게 된다. 오라리 방화사건 방화범이 4·3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경찰관의 신분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맹렬한 토벌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취재를 하면서 경찰뿐만 아니라 미군정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록영화 '제주도 메이데이'도 사전에 준비된 각본에 의해 촬영된 것이고, 마치 무장대가 오라리를 방화한 것처럼 조작 편집함으로써 평화협상 파기와 강경진압작전을 위한 선전용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는 4·3취재반장을 맡을 초기만 해도 4·3과 미군은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체험자들을 상대로 증언 채록을 할 때 빼놓지 않고 던진 질문은 "미군을 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촌로들은 "미군과 4·3사태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오히려 퉁명스럽게 반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4·3의 취재범위가 넓고 깊어지면서 미군의 실체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중요한 고비마다 그들이 개입하지 않은 사건이 없을 정도로 깊숙이 관계돼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그것은 마치 고구마 덩굴 같은 것이었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그 속에는 미군이 도사려 있었다.

1999년 4월 3일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나는 '<제주도 메이데이>를 통해 본 미군정의 4·3토벌정책'이란 내용으로 주제 발표했다. 4·3이 미군정 시기에 일어난 점, 미군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던 시점에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됐다는 점에서 제주 민간인 학살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미국은 비밀문서 공개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4·28 평화협상과 5·1 오라리 방화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1988년 작고한 제9연대장 출신 김익렬 장군이 4·3 유고록을 남겼다는 정보를 듣게 됐다. 즉각 유족들과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1989년 8월 초순께 김익렬 장군의 가족들을 만나러 상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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