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여성의 날 제민일보·제주여성인력개발센터 공동 취재
도내 요양보호사 100명 설문, 휴게 공간 열악·폭언 등 성희롱 무방비 노출
병실에서 끼니 해결하는 사례도…요양서비스 질과 직결 개선·지원 서둘러야
가족에게만 맡겨졌던 노인 돌봄·부양을 사회적 차원에서 분담·지원한다는 취지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3년차가 되고 있다.
지난해 요양보호사자격시험이 도입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들의 노동조건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다.
제민일보는 올해로 103번째 3·8여성의 날을 맞아 제주여성인력개발센터와 공동으로 지난 2월 14일부터 설문지와 1대 1 면접, 인터뷰 등을 통해 돌봄 서비스 노동자의 근로환경 실태를 살펴봤다.
# 설문 대상 53.4% 4대 보험 미가입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도내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은 1만2029명에 이른다. 이중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되는 요양보호사는 시설 요양보호사 1149명·재가 요양보호사 535명으로 1684명에 불과하다. 이는 국민연금보험관리공단과 해당 시설·단체별로 신고한 숫자에 근거한 것일 뿐 실제 현장에는 더 많은 수의 돌봄 서비스 노동자가 활동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라는 큰 틀 안에서도 성격별로 간병보조사와 복지 간병사, 요양보호사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나누는 큰 기준 중 하나가 국민연금보험 등 4대 보험 가입 여부와 근로시간이다.
제민일보와 제주여성인력개발센터가 도내에서 현재 활동 중인 요양보호사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전체 40%만이 고용보험 또는 산재 보험에 가입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4대 사회보험 가입 실태 역시 평균 53.4%가 가입돼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요양보호사들의 일일 평균 근무 시간은 9시간 이상~12시간 미만이 가장 많았으며, 월 급여액은 100만원 이상~150만원 이하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 생계비 마련 목적…성적불쾌감 노출
생계유지 등 경제적 이유와 여성경력단절 해소 등 사회구조적 지원에 힘입어 ‘요양보호사’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기대치와는 거리가 먼 현실이다.
응답자의 68%가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으나 이들 대부분(91%)이 하루 1시간의 휴식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별도의 휴게 공간이나 탈의 공간이 없다는 응답이 71%나 됐고, 휴게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적절하지 못하다는 응답이 44.8%나 되는 등 근로환경 개선이 요구됐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3명이 일을 하는 가운데 성적인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성적인 불쾌감을 준 행위자로는 90.3%가 환자를 꼽았다.
가장 많은 성희롱 유형으로는 언어적인 성희롱이 74.2%를 차지했으며 신체적인 성희롱도 19.4%로 파악됐다. 이런 형태의 부당한 경험에 대해 48%가 참고 지낸다고 응답하는 등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요양보호사들은 특히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으로 △건강 △낮은 임금 △힘든 업무를 우선으로 꼽았고, 이들 일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는 응답도 29%나 됐다.
# 병실에서 식사 해결까지
현장에서 사회적 서비스 확대에 따른 정책적 배려 부족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양시설과 재활의원, 종합병원 등 요양보호사가 활동하고 있는 시설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근무환경의 개선이나 직업에 대한 사회 인식 전환, 업무와 관련한 지침 마련 등 장치 마련이 절실했다.
전체 요양보호사 중 하루 1시간의 휴식 시간이 보장되는 경우는 ‘복지 간병’에 한정됐다. 이들의 경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이중 1시간은 점심시간 및 휴식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요양시설에 소속된 요양보호사는 ‘공식적’인 휴식 시간은 없다고 확인했다. 종합병원에 배치된 간병인들은 하루 3교대 근무를 하고 ‘쉬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때를 놓친 식사를 병실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나마 간이시설 형태로 탈의실이 있는 경우는 나은 편으로 대부분이 화장실이나 심지어 배선실 등의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는 등 사생활을 보호받을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았다.
재활병원에서 간병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명숙씨(49)는 “식사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만 냉장고 등을 이용할 수 없어 불편한 점이 많다”며 “병실 구석에서 간신히 요기를 하는 등 사명감으로 환자를 돌보지만 시급이 3750원에 불과한데다 보호자들 중에는 말 등을 함부로 하는 경우도 있어 힘들다”고 털어놨다.
# ‘직업병 호소’ 등 안전장치 절실
4대 보험 미가입 등에 따른 부작용도 확인됐다. 혼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 또는 장애인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는 탓에 대부분 요양보호사가 어깨와 허리 등 신체 부위별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했지만 이를 치료하는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시내 종합병원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A씨는 "어깨나 허리에 통증을 느끼는 것은 요양보호사들 사이에서 '직업병으로 통한다"며 "복지 간병인이나 요양시설 소속 요양보호사들과 달리 치료는 모두 자부담"이라고 말했다.
지금이야 조금 사정이 나아졌지만 '요양보호사'제도가 정착되기 전까지 '아줌마'로 불리며 폭행·폭언 등에 무방비로 노출됐는 데다 휴일이나 연월차 수당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지난해 5월 돌봄노동자법적보호를위한연대가 구성되고 법 제정 움직임도 일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답은 찾지 못한 상황이다.
설문 분석을 맡은 정영태 제주발전연구원 여성정책센터 연구원은 "갈수록 요양보호사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다 요양보호사의 처우는 곧바로 요양서비스의 질로 연결 된다"며 "정책적으로 요양보호사의 기본 근무 매뉴얼을 마련하고 기본적인 휴게 공간을 마련하는 등 법적 보호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동취재팀=고 미 문화부 부장, 고혜아 문화부 기자, 강수영 제주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 황승회 제주여성인력개발센터 팀장, 정영태 제주발전연구원 여성정책센터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