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20> '4·3은 말한다' 연재 ①

   
 
  1990년 6월 2일 「제민일보」 제1호가 윤전기에서 나오는 역사적인 순간 신문을 살피고 있는 간부들. 왼쪽부터 김지훈 대표이사, 강정홍 논설위원, 송상일 편집국장과 필자.  
 

 '제주신문 폐업'…취재반 기자들도 '해직'
  제민일보 창간 후 4·3 前史부터 새 출발

'4·3은 말한다' 연재 ①
'제주신문 사태'는 1989년 11월부터 경영권 확보와 언론 민주화를 둘러싼  충돌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70여일간의 장기농성으로 이어진 이 사태는 1990년 1월 '제주신문 폐업'이란 사측의 극한 처방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참언론을 부르짖던 110명의 사원이 집단 해고됐다.

4·3취재반 기자들도 대부분 해고 대열에 끼었다. 덩달아 「제주신문」에 1989년 4월 3일부터 매주 2회씩 연재되던 '4·3의 증언'은 그해 12월 5일자에 실린 제57회를 끝으로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8개월 동안 연재한 내용은 1948년 4월과 5월 상황에 불과하였다.

해직 언론인들은 새 신문 만들기 작업에 착수했다. 해직된 사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대안으로 내놓여진 것이 신문 창간이었다. 신문 창간의 기초 자본은 사원들의 출자금과 도민주 공모로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1990년 6월 2일 '제주인의 자존심'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창간된 것이  「제민일보」이다. 제민일보사는 제주시 이도2동 소재 제주감귤협동조합 창고를 빌려 신문을 만들었기 때문에 '창고 신문사'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동안 중단됐던 4·3 연재는 「제민일보」 창간호부터 시작됐다. 그때 새로 붙여진 기획물 제목이 바로 '4·3은 말한다'이다. 이 제목에 대해 의아해 하는 독자들도 있었다. '4·3을 말한다'로 해야지 어떻게 '4·3은 말한다'가 될 수 있냐며 어법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4·3취재반은 '우리가 4·3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4·3이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하자'는 뜻에서 그런 제목을 붙였다. 이 제목에는 '선입견을 갖지 말고 무슨 일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진실을 충실하게 취재하고 알리면 4·3의 본 모습이 저절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취재반의 다짐이 담겨 있었다.

이때도 사건의 성격을 말해주는 꼬리표 없이 '4·3'으로 표기했다. 성격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4·3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는 전략이 스며져 있었다. 다만 새 연재를 하면서 획기적으로 방향을 튼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4·3 연재 시점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제주신문」에서 '4·3의 증언'을 연재하면서 첫 연재의 시점을 무장대가 공격한 1948년 4월 3일로 잡음에 따라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배경이나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상황 전개에만 매달리는 집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부담을 덜기 위해서 4·3 이전 2기와 4·3 이후 8기 등 모두 10기로 시기 구분을 하긴 했지만,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러다보니 1948년 4월과 5월 상황을 다루면서도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전사(前史)라 할 수 있는 1945~1947년 상황을 자주 언급하게 된 것이다.

가령,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 보고서인 'G-2 보고서'를 설명하다보면 1945년 38선 이남에 대한 미군 점령 상황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진압명령을 받은 9연대의 출동 상황을 언급하면서 1946년 11월 발족한 9연대의 창설 과정을 서술하게 되었고, 4·3의 원인을 다룰 때는 저절로 1947년 '3·1 발포사건'을 단편적이나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집필하면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제주신문」 '4·3의 증언'에서는 1948년 5월까지의 '4·3 후 제1기'의 상황을 서두에 다룬 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건의 배경이 되는 해방정국, 즉 '4·3 전 제1·2기'의 과정을 살필 계획이었다.

그런데 「제민일보」 '4·3은 말한다'라는 새로운 연재가 시작되면서 이 문제가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 즉 '4·3은 말한다' 연재부터는 앞에서 밝힌 시기에 따른 부담감을 털어내고 마음 놓고 해방정국 상황부터 다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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