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빌레못은 식수확보를 위해 2년동안 못을 판 것이다.

◈되빌레못·앞새물·뒷새물(한경면 저지리)

 한경면 저지리에서 동쪽으로 1km 남짓, 저지리와 한림읍 금악리를 잇는 군도를 따라 가면 남북으로 길게누운 마종이오름(馬踪岳)을 만날 수 있다.

 마종이는 지금 단풍소문과 함께 몰래 스며들어온 가을의 전령이 얼핏 눈에 띌 뿐,가을의 진입을 막고있는 요새처럼 녹음이 여전하다.

 마종이오름의 주종은 해송이다.간혹 보리수나무와 팽나무·잡목이 눈에 띨 뿐 낙엽수가 거의 없어 가을산과 거리가 멀다.  

 특히 표고 169m의 이 오름을 돌아가다 보면 상수도가 개설되기 이전,저지리 주민들이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못을 팠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다.

 대표적인 게 되빌레못·앞새물·뒷새물·강정못·알못·곤물(고은물)·구진물(궂은물) 등이다.

 되빌레못은 면적이 250㎡가량 되는 인공못으로서 저지리에 있는 못가운데 가장 크다.

 특히 이 물은 땅속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빌레(반석지대)지역을 택해 못을 판 것이다.

 도내 여느 못이 그러하듯 이곳에도 100년은 족히 넘은 팽나무가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모두 3그루다.못 입구 진입로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 곳에 팽나무 2그루가 서 있고 못 중심에 또다른 팽나무가 있다.

 명당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거목이 자라는 곳이 명당이다.이들 팽나무가 맨 처음 심어졌을 때는 주변에 다른 묘목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다른 나무들은 사라지고 팽나무만 거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자리가 혈이 맺힌 명당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되빌레못 입구에 서 있는 공덕비는 밭임자였던 조종무(趙宗武)의 기념비와 공사 감독관이었던 고귀현(高貴現)의 뜻을 기린 것이다.물이 괴기 좋은 곳을 마을을 위해 선뜻 내놓은 독지가의 뜻을 기려 저지향원(楮旨鄕員)일동의 이름으로 공덕비를 세운 것이다.

 물이 있는 곳은 쉼터나 다름 없다.정자와 팽나무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 듯 제주의 선인들은 못을 파면 동시에 팽나무를 심었다.이 팽나무는 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공덕비는 앞새물과 강정못에도 있다.저지리는 예로부터 물이 워낙 귀한 중산간 마을이었기 때문에 봉천수를 가둬놓기 위해 마중오름을 돌어가며 못을 팠다.

 앞새물의 공덕비는 못 부지를 내놓은 양왈득(梁曰得)의 뜻을 기린 것이며 강정못의 경우에는 지난 60년에 세운 것으로 김인홍 지사의 비석이다.당시 도백의 은덕을 기린 것으로 오랜 세월동안 풍파에 씻긴 탓인지 비문을 제대로 알아볼수 없는 상태이다.

 지금처럼 포크레인조차 없던 시절이라 일일이 곡괭이 질을 하며 못을 팠다.이 때문에 되빌레못이나 앞새물의 경우 못을 조성하기 까지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대개 관내 오름 두 군데(저지오름·마중오름)가운데 마중오름 주변에 못을 집중적으로 팠다.풍수지리에 의하면 마중오름 주변은 생기처(生氣處)이고 저지오름 주변은 사기처(死氣處)이기 때문에 저지오름 주변의 인공못은 한군데도 없다는 게 무척 이채롭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결과,되빌레못에는 개여뀌를 비롯 쥐손이풀,큰뱀무,붕어마름,마름,개구리밥,말,빗자루국화,큰골,송이고랭이가 서식한다.

 뒷새물은 면적이 70㎡이며 자연못이다.3∼4개의 밭을 넘어 가야 할 만큼 인적이 뜸한 탓인지 수량이 많고 수질이 비교적 깨끗해 손바닥만한 붕어와 개구리,소금쟁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

 또 이곳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3그루의 팽나무가 있다.여기에다 흰구름 하나만 걸리면 한폭의 풍경화다.특히 팽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주변 3m가량의 담장에 퇴적돼 저물어가는 가을이 주는 감상과 사색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게다가 진입로 주변 잡목덤불은 꿩밭이나 다름없다.취재과정에서 덤불을 헤치는 순간 3∼4마리, 6∼7마리의 꿩이 푸드덕하고 날아간다.

 앞새물은 입구에 문을 달 정도로 큰 물통이다.물통은 모두 4개.진입로를 따라 양쪽에 2개의 물통이 자리잡고 있다.

 물을 뜨기 용이하게 돌계단과 물허벅대를 만든 상태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수풀로 빽빽히 뒤덮여 있는 게 마치 늪을 연상케 한다.

 반가운 것은 아직도 이곳에는 유혈목이(물베염·돗줄래)가 산다는 것이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김용학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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