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생씨, 장애인식개선전문강사 활동

   
 
  장애인식개선교육 전문강사로 활동하는 오영생씨(사진 오른쪽)와 최은주씨(사진 왼쪽).  
 
장애인의 날이다. 이맘때만 되면 각종 행사가 쏟아져 나오며 반짝 관심이 장애인들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장애인이 처한 현실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채 다시 예전처럼 이어지기 일쑤다. 장애인이 처한 가장 힘든 사회현실은 무엇일까. 장애인 일자리와 이동권 문제,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시선으로 나누어 보고 각각의 주제에 맞는 도전기와 실태 등을 3회에 걸쳐 다뤄본다.

"선생님도 많이 아프세요?"
"그래요. 선생님도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랍니다."
걱정스레 묻는 초등학생의 질문에 오영생씨(46·지체장애 3급)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당당하게 말한다. 오영생씨는 장애인식개선교육 전문강사로 활동하는 밝고 의욕이 넘치는 제주여성이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의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따랐다.

△장애 극복, 2배 노력 필요해
그녀는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됐다. 부모님이 갖은 애를 다 써봤지만 일단 들어선 병을 고칠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보조기를 차고 학교를 다녔던 영생씨는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주위의 시선이 싫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싫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영생씨는 의상학원에서 재봉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부산으로 갔다. 3년간의 부산 생활은 영생씨에게 큰 도전이었고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부산에서 제주로, 서울, 다시 제주를 오가며 영생씨는 의상실에서 재봉일은 물론 생명보험 영업직까지 닥치는 데로 일을 해내는 억척스러움을 보였다.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2배의 노력이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 새로운 도전 시작
그러던 그녀가 삶의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됐다. 장애인으로서 자신이 직접 장애인식개선교육 전문강사가 되겠다는 다부진 꿈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는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2007년부터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사무실을 임대해 활동을 시작했다. 각급 학교를 돌며 장애인의 인권과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아무리 활동경력이 쌓이고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효과가 높다고 해도 학력을 중요시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는 영생씨가 활동한만큼 대우를 받는게 쉽지 않았다. 또한 장애인식개선교육은 무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강사료를 받는 것도 어려웠다. 영생씨는 장애인으로서 새로운 직종을 개척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자기 혼자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2010년 드디어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진행할 장애인 강사를 양성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영생 씨는 당장 전화를 걸어 모집에 응했다. 지금은 함께 교육을 받았던 장애인 강사 6명과 함께 연령에 맞춘 장애이해교육 및 체험교육 등을 연구·개발하고 실제 교육에 적용해 보면서 그 어느 때 보다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장애인이라서 더욱 장애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싫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장애인과 더불어 비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꿉니다. 장애를 부끄러워 하기보다는 열심히 배우고 도전한다면 꿈은 이뤄지는게 아닐까요?"

오영생씨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식개선교육 전문강사'와 같이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고 당당히 일할 수 있는 다양한 직종이 더 많이 개발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힘찬 발걸음을 옮긴다. 변지철 기자 jichul2@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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