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보도 등 곳곳 장애물투성이
저상버스 도입 5.9%…이용도 불편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서 '이동권 확보'는 필수불가결한 사안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08년 4월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많이 더디다.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등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체험하기 위해 구도심 일대를 직접 동행했다.

△집을 나서는 것부터 고행 시작

   
 
 

제주시 남문사거리 동쪽방면 제주성지 인근 보도가 매우 협소한 보행 공간과 가로등에 가로막혀 장애인들이 보조장구에 탑승한 상태로는 이동이 불가능하다. 한 권 기자

 
 


"집 앞을 나서는 순간 긴장의 연속입니다"

강상중씨(가명·지체장애 1급)는 지난 19일 발이나 다름없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길을 나섰다. 집을 조금 벗어났다 생각한 순간 그의 말은 현실로 다가왔다. 움푹 파인 골목길을 피했더니 이내 공사로 인한 지장물이 길을 막아섰다.

일도2동주민센터에서 칠성로 방면으로 이동하는 동안 높은 보도턱과 가파른 경사보도, 부서진 바닥으로 몇 번이나 휠체어를 멈춰야 했다.

제주동초등학교 인근 보도에서도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더 이상은 이동이 불가능했다.

돌아가는 길도 사정은 비슷했다. 결국 차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던 강씨에게 주행하는 차량의 위협적인 경적이 쏟아졌다.

전동휠체어는 구조상 자동차나 오토바이와 달리 후사경이 없어 뒤쪽에서 접근하는 물체 등은 확인하기 어렵고 자칫 보도턱에 부딪치면 전복 위험이 크다.
 
△높은 문턱 쇼핑 엄두도 못내

동문시장을 향한 길, 처음 진입까지는 수월했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이 좁아지고 여기 저기 쌓인 적치물들로 앞으로 향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 휠체어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눈치를 견디지 못해 시장을 떠나는 길 역시 부서진 볼라드 등으로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강씨는 "직접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맞는 옷을 사고 싶다"며 "공공기관 등과 달리 (칠성로 인근) 대부분 매장이 계단을 통해 들어가야 하거나 입구 턱이 높아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애인들의 진입을 위해 완만한 경사로 받침대를 마련한 일부 매장들 역시 정작 가게 안이 협소해 들어갈 엄두도 못냈다.

△아직은 먼 환경 조성

장애인 이동 편의를 위한 저상버스 역시 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뿐이다.

제주도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5.9%에 그치는 등 대수가 적어 한참을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다. 강씨는 "저상버스를 도입했다고 하지만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정류장이 많다"고 지적했다.

비교적 교통량이 적은 제주성지와 오현단 부근에서 강씨의 전동휠체어는 다시 멈춰섰다.

"이곳부터는 보도로 다닐 수 없어 차도를 이용해야한다"는 강씨의 말처럼 일부 보도는 폭이 50㎝에 불과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곡예라도 해야 할 정도였다. 가로등이 보도의 2/3를 막고 있는 구간에 이르러서는 기자 역시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강씨는 "관공서나 문화시설 등 건물 내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지고 있지만 문제는 갈 수 없다는 것"이라며 "이동권 확보는 그래서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 권 기자 hk0828@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