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도시경관은 자연의 지형조건을 살려 풍토에 알맞게 그 곳에만 존재하는 환경이나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이것은,여러 시대의 층이 쌓여 있고,여러 가지 기능과 의미가 얽혀 있어서 변화가 넘치는 복합적인 공간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러한 매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어쩌면,자동차가 없던 시대에 인간적인 척도(Human Scale)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이기에,현재의 사람들이 걸어도 기분좋은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근대의 도시는 기능적·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원래의 지형을 무너뜨리고 그 토지가 갖는 특징이나 고유성을 무시하며 개발하기 시작하였다.자동차의 등장과 함께 도로가 넓어지고 직선화한다.물론,동시에 건축물도 함께 같은 논리와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여기에는 시간의 축적이나 장소의 의미·특징은 사라지고,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이른바 International Style이 등장하면서,도시경관은 몰개성과 혼돈의 모습을 보이고 상품화되어 균질적(均質的)인 모습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고장 제주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제주의 원풍경(原風景)을 담은 과거의 사진에서는 제주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오름의 경사를 닮은 초가,돌담으로 구획된 곡선의 올래,군데군데 서있는 키 큰 나무들,갯가로 파도치는 해안풍경,어느 곳에서든 배경이 되는 웅장한 한라산,이러한 경관요소들은 항상 자연이 배경이 되는 정겨운 도시의 분위기를 우리에게 안겨준다.이러한 원풍경을 우리는 과거에 갖고 있었다.

 그러나,현재의 모습은 어떠한가.현재의 도시경관에서 제주의 원풍경을 발견할 수 있을까.심지어는 한라산이나 해안의 자연환경까지도 인간들의 손에 의해 변모해 버려,답답함과 삭막함,갯내음을 대신한 자동차 배기가스의 매캐함만이 가득 차 있다.이것은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려는 여유를 갖지 못하며,싱그러움과 푸르름을 느끼지 못하게 돼버린 우리들의 심성에 큰 원인이 있지는 않을까.

 도시경관은 인간과 자연사이의 중간영역으로서,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하는 대상이다.도시경관은 도시의 질과 문화수준을 대변하며,후세의 역사유산으로서 남겨지게 된다.

 따라서,도시경관은 개성과 아름다움,풍요로움을 우선하는 가치관을 가지고,우리의 원풍경을 바탕으로 문맥적인 수법에 의하여 충분한 논의를 거쳐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혹여 이러한 기나긴 과정에 짜증을 느낄 수도 있지만,지속적인 실행에 의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순간적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기에 충분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실제로,개성과 아름다움,풍요로움의 도시경관을 위해서는,시민 모두가 이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주도해야 하며,제도적·정책적 지원을 담당하는 호의적인 관청과,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개인적 혹은 개별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특히,도시경관의 구성요소인 건축물의 소유주나 사용자가 되는 시민의 역할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이미 늦은 것은 아니다.앞으로 제주의 원풍경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그 연구성과에 바탕을 둔 각종 계획과 정책들이 수립되고 추진된다면,제주만의 도시경관은 반드시 형성될 것이며,더욱이 그러한 방향설정자체가 의미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추억만으로 떠올리던 제주의 도시경관이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양상호·탐라대 교수·건축학>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