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39> 다랑쉬굴 취재기 ①

   
 
 

다랑쉬굴은 사람 허파 모양의 동굴 구조로 되어 있다. 다른 쪽으로 이동하려면 천장이 낮아 기어갈 수밖에 없다. 앞쪽부터 김동만·필자·고대경·강홍균. 김기삼 사진

 
 

4·3연구소 발견…4·3취재반과 합동조사
동행했던 채정옥 "내가 수습한 시신이오"

다랑쉬굴 취재기 ①
1992년 4월 2일 구좌읍 중산간에 있는 '다랑쉬굴'에서 4·3 희생자 시신 11구가 발견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었다. 참혹하게 몰살당한 모습 그대로 발견된 이 시신들은 정밀조사 결과 초토화의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 12월 18일 당시 9연대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해 3월말 제주4·3연구소(이하 연구소) 고창훈 소장(제주대 교수)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고 교수는 "일주일 전 연구소 조사팀이 현장조사를 벌이던 중에 자연동굴 안에서 4·3 희생자로 보이는 유해 11구를 발견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즉각 연구소와 4·3취재반이 합동조사해 진상을 확인해보자고 제의했다.

나중에 알려진 이야기지만, 다랑쉬굴의 참상은 그로부터 100여 일 전인 1991년 12월 22일 김기삼·김동만·김은희 등 다섯 명으로 구성된 연구소 증언조사팀이 처음 현장을 찾아냈다고 한다. 1992년 3월 22일 연구소 차원에서 현장을 재확인하고 대책을 논의하던 끝에 제민일보 4·3취재반과의 공조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3월 29일 다랑쉬굴에 대한 연구소와 취재반의 합동조사가 실시되었다. 연구소 측에서는 고창훈·김기삼·김동만 등 3명이, 4·3취재반 측에서는 취재반 소속 기자 6명 전원(양조훈·서재철·고홍철·고대경·김종민·강홍균)이 참여하였다.

한편 나는 이때 종달리 채정옥 선생을 모셔오도록 했다. 국민학교 교사 출신인 그는 4·3 당시 무장대에게 납치되어서 다랑쉬오름 주변에서 생활했다는 취재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취재반 김종민 기자가 4년여 전인 1988년 채정옥 선생의 증언을 채록·정리한 노트에는 다랑쉬오름 주변 굴에서 토벌당했던 사건의 발생날짜와 희생자들에 대한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만일 채정옥 선생이 증언했던 '그 굴'이 연구소가 발견한 '다랑쉬굴'과 동일한 굴로 밝혀진다면, 그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결정적 인물이기에 흥분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다랑쉬오름 서쪽 해발 170m 지점에 위치한 다랑쉬굴은 잡초들이 무성한 들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굴의 입구는 수직형으로 직경이 60㎝ 안팎이어서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았다. 풀숲에 묻혀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쉽게 찾을 수 없는 굴이었다. 합동조사반은 한사람씩 조심스럽게 굴속으로 내려갔다. 좁은 입구를 3m가량 내려가자 굴은 금방 넓어졌다. 손전등을 비추자 바로 눈앞에 백골들이 나타났다. 숨이 턱 막혀왔다.

10평 남짓한 천연동굴 바닥에 10구의 시신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어떤 시신은 허리띠를 걸친 채 그대로 살이 썩어서 백골로 남아 있었다. 어떤 시신 발밑에는 여자 고무신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 비녀가 꽂혀 있는 시신도 있었다. 여자 희생자도 여럿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시신 주변에서 플라스틱제 둥근 안경, 흰색 단추, 버클, 썩다 남은 옷가지 등이 발견되었다.

시신이 있는 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좁은 통로가 보였다. 폭이 좁고 높이가 1.2m 정도여서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8m 가량 기어가다보니 다시 넓은 방 모양의 공간이 나타났다. 일행은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활용품이 한 눈에 들어왔다. 부엌인 듯 무쇠솥 2개가 받침돌 위에 가지런히 올려 있었고, 그 주변에 된장같은 물질이 담긴 항아리를 비롯해 질그릇, 놋그릇, 놋수저, 물허벅, 접시, 가위, 석쇠 등이 보였다. 요강도 있었다. 이곳에서 시신 1구가 더 발견되었다. 그 주변에 대검과 철창이 하나씩 있었지만 총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놀라운 현장이 속속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동행한 채정옥 선생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현장을 확인한 채 선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 굴을 발견했나요? 이 굴이 맞습니다. 그리고 저 시신들은 내가 정리한 시신들이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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