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41> 다랑쉬굴 취재기 ③

   
 
  44년만에 다시 다랑쉬굴 속으로 들어가는 채정옥 선생. 굴 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4·3취재반, 희생자 11명 전원 신원 밝혀
 "安葬해주자" 여론 불구 "수장한다" 소문

다랑쉬굴 취재기 ③
1948년 12월 3일 구좌면 세화리가 무장대의 습격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마을은 큰 피해를 입었고, 주민 40여명이 피살되었다. 토벌대는 그 뒷날인 12월 4일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벌였다. 다랑쉬굴이 발견되었을 때 세화리 일부 주민은 그 굴이 그날 토벌된 굴이라고 주장하였다. 경찰은 이런 진술을 근거로 세화 피습사건과 다랑쉬굴 은거자들이 연관이 있는 것처럼 소문을 퍼뜨렸다. 피해를 입은 세화리 쪽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그러나 다랑쉬굴이 토벌된 날은 '12월 4일'이 아니라 '12월 18일'이었다. 그것도 제주도 동부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실시된 9연대 초토화작전의 일환이었다. 특히 육지부로 부대 이동을 앞둔 9연대는 '그들과 교체하게 될 부대에게 압도할 만한 업적을 남기기 위하여 마지막 박차를 가하였다'(존 메릴의 표현). 주한미군사령부 정보보고서(1948년 12월 24일자)는 "제9연대 2대대는 12월 18일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군사작전에서 민간인과 경찰의 도움을 받아 130명을 사살하고 50명을 체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건현장에 있었던 체험자들의 증언도 이 기록과 일치했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은 이런 사실을 보도하는 한편 다각적인 취재를 통하여 다랑쉬굴 희생자 11명의 신원을 모두 파악해 발표하였다. 그 희생자 속에는 아홉 살 난 어린이와 여자 3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11명 모두는 나중에 4·3특별법에 의한 '4·3희생자'로 결정되었다.  도표 참조

 다랑쉬굴 희생자 명단

사망자

나이

성별

출신지

강태용

33

남자

종달리

고두만

20

고순경

20

고순환

26

고태원

25

박봉관

31

함명립

19

김진생

51

여자

하도리

부성만

21

이성란

19

이재수

9

남자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차츰 누그러졌다. 다랑쉬굴 희생자 유족 가운데는 시신을 찾지 못하자 혼만 불러 들여 헛묘(虛墓)를 만들어 벌초해온 사실도 밝혀졌다. 그날 토벌작전에서 다랑쉬굴 주변에 희생자가 더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경찰 측은 다랑쉬굴에 대한 토벌 실상과 유해 신원이 모두 밝혀지자 특이사항이 없는 것으로 판단, 그 사후처리를 행정기관에 이관하였다. 북제주군은 이에 따라 1992년 4월 25일부터 5월 1일까지 연고자 신고기간을 설정하여 유족들의 신고를 받는 절차에 들어갔다.

다랑쉬굴 시신을 수습했던 채정옥 선생이 그 무렵 나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고 싶다고 했다. 종달리 채 선생 집에 갔더니 간밤에 있었던 일을 털어놨다. 집에서 혼자 TV를 보던 중 다랑쉬굴 관련 뉴스가 나오는데, 순간적으로 희생자 아무개의 얼굴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몸이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전화를 걸어 제삿집에 가있던 가족에게 연락했다. 급히 달려온 부인은 "○○아방 얼굴이 보였다"는 말에 금방 '들렸음'을 알아차렸다.

채 선생 부인은 소주병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방 억울함을 잘 알고 있고, 곧 양지 바른 곳에 묻게 될 터니 걱정 말고 소주나 드시고 가시라"고 말하면서 소주를 뿌렸다고 한다. 얼마 없어서 채 선생의 몸이 풀렸다. 그는 나에게 "그 분은 원체 힘이 셌는데 혼령도 세월이 흐르다보면 힘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특이한 빙의 현상이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40여년 동안 음습한 동굴에 갇혔던 유해들을 양지 바른 곳에 매장하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한 법조인은 "그렇게 오랜 세월 시신마저 팽개쳐야 할 죄는 있을 수 없거니와 하물며 어린이와 여인들도 포함된 이 죽음을 누가 단죄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제주도의회 의장(장정언)과 이 지역 국회의원 당선자(양정규) 같은 지도층 인사들도 "예의를 갖춰 영혼들을 안장시킬 수 있는 진혼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다랑쉬굴 4·3희생자 대책위원회'가 4월 21일 발족되어 범도민적인 장례절차를 촉구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다랑쉬굴 유해들을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 흔적을 없앤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족들의 뜻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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