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훈일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관장  
 
"숨을 충분히 들이쉬었다가 뱉는 그 순간. 들숨도 아니고 날숨도 아닌 그때, 충분히 뱉어내고 들이쉬는 이것을 '무엇'이라 하는지 묻고 싶다. 들숨이 삶이고 날숨이 죽음이라면 더 이상 들이쉴 수도, 그렇다고 숨을 멈출 수도 없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사진가는 들숨과 날숨 사이인 삶과 죽음의 교차, 그 무중력에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김홍희의 사진 노트 「나는 사진이다) 中)

들숨과 날숨. 둘을 합쳐 '숨'이라 부른다. 살아있음이다. 사진을 찍는 얘기라면 아마도 더 깊이 있게 철학을 담을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와 비슷한 느낌으로 문을 연 '곳간. 쉼'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곳간.쉼'은 성산읍 삼달리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과 벗을 하며 찾아낸 공간이다. 만든 것이 아니라 찾아냈다. 감귤창고로 1년에 4개월(11~2월) 치열하게 호흡을 하다 나머지 8개월 숨을 죽이는 공간에 불현듯 생명이라는 것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을 때만해도 공간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조차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막상 열린 공간은 색다른 감흥으로 마을과 마을 너머 모두에게 스며들었다.

예술은 아마도 삶과 일치 했을 때 그 감동은 더 크게 느껴진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창고 안에서 본 예술가들의 작품은 아마도 삶 안에 녹아있는 농촌의 실상과 예술가들의 진정성을 봤을 거라 생각한다. 도시 좋은 전시장 안에서 예술작품을 보는 것 과 창고에 걸려있는 작품을 보는 것은 다른 느낌일 것이다. 그것은 비단 마을 밖에서만의 감정은 아니다.

"전번엔 사진 걸어 놔선 게 이번엔 그림인게"

동네 어르신들이 툭 한마디를 던진다. 익숙한 감귤 창고가 '곳간.쉼' 안으로 들어간다는 신호다.

"이건 어디라?" "이건 뭐로 만든거?" "잘도 잘 그렸져"

처음 집을 나와 바깥과 만난 아이들처럼 한번 쏟아진 궁금증은 쓸고 채워도 사라지지 않는다.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간 자리에 이번엔 작은 배낭에 편한 복장을 한 올레꾼이 들어선다. 조금은 지친 표정에 풀풀 흙먼지가 이는 걸음이지만 이 곳에서만큼은 부담이 아니라 어울리는 그림이 된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전시 공간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으나 가치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해 방치 되고 있는 공간들을 활용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제주를 보고 느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제주다운 것을 찾아 오는 것이지 어디에나 있는 것을 제주에서 만나는 것을 희망하지는 않는다.

감귤창고나 고구마저장소 등이 기분 좋은 변신을 한다. 하지만 아직 미미하다. 간신히 농촌에 남아있던 오래된 블록 건물이나 양철지붕 등은 소리없이 사라지고 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복원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곳간.쉼'은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조금씩 특별해지고 있다.

쓸모를 잃은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무언가를 하고, 또 그것을 지켜내는 일. 지금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닐까.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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