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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 의미 배웠어요”[‘제민일보 4·3보도기획전’에서] 3. 청소년기자 이가영·찬영 남매
고 미 기자
입력 2011-06-13 (월) 10:06:55 | 승인 2011-06-13 (월) 10:06:55
   
 
  ▲ 지난 11일 제민일보 창간 21주년 기념 '제주4·3보도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이재호씨(50·제주시 삼양1동)가 자녀들에게 다랑쉬굴 유해 발굴 현장을 담은 기사를 설명하고 있다.  
 
4월이 되면 제주섬은 큰 울음으로 뒤덮인다. 하지만 한껏 피었다 단숨에 져버리는 벚꽃처럼 위령제가 끝나고 나면 아쉬움과 앞으로의 숙제만을 곱씹으며 스물 스물 정신없는 일상에 매몰돼버린다. 지금을 사는 이들에게도 익숙하기 보다는 연례행사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앞으로를 살 어린이·청소년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감히 두려워 질문을 던지기 어렵다.

그렇다고 아직 진행형인 역사에 미래 세대를 나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답 중 하나를 우연처럼 발견했다.

하늘이 뚫린 듯 퍼붓던 장맛비가 주춤했던 지난 11일 가영이(14)네 네 남매가 '제주4·3보도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제주4·3평화기념관을 찾았다.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찾은 그 곳은 현장 학습 등으로 적어도 한 두 번은 만났던 공간이다. 하지만 이날의 감흥은 어딘가 남달랐다. 책 같은 다른 자료들에서 단편적으로 만났던 제주4·3이 살아있는 역사로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글이나 사진 같은데서 봤을 때는 사실 만들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을 기록'하는 신문 자료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제주4·3평화공원이나 기념관에서 스치듯 만났던 것들을 직접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아직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고, 밖으로 꺼내놓기 위해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다는 사실은 학교 수업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것들이다.

현장 수업에서도 간략한 설명을 들었을 뿐 어떤 사정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보상을 받았는지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신문처럼 '글밥'이 많았다면 힘들었을 사실들이 사진자료와 유족이나 취재반장의 생생한 증언으로 소개되다보니 몇 번이나 발을 멈추고 내용을 뒤지는 표정 역시 진지해졌다.

아직 어린 두 동생 예영이(11·제주대교육대학부설초 4년)와 보영이(9·…)는 엄숙한 분위기에 부담스런 표정이었지만 제민일보 청소년기자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있는 가영이(14·제주열방대학교부설 기독학교)와 찬영이(13·제주대교육대학부설초 6)는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들에 놀라움과 함께 사명감 비슷한 것을 내비쳤다.

가영이가 입을 뗐다. "제주4·3에 대해 듣기는 했는데 이번 전시를 보면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진행형의 사건임을 알게 됐다"며 "제주4·3을 지난 역사로 둘 것이 아니라 60여년의 한과 눈물의 아픔을 넘어 화해와 상생의 길로 달려가야 하는 의미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찬영이 역시 "책을 봐도 알기 어려웠던 사실들을 이 곳에 와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며 "이제 누가 제주4·3을 물으면 제주민의 희생이 담긴 '항쟁'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특별했던 경험의 소감을 전했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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