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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바로 알리는 이정표 기대"[‘제민일보 4·3보도기획전’에서] <4>이성찬 제주4·3평화재단 상임이사
고 미 기자
입력 2011-06-16 (목) 09:40:26 | 승인 2011-06-16 (목) 09:40:26
   
 
  ▲ 이성찬 제주4·3평화재단 상임이사는 "제민일보의 제주4·3보도기획전은 지금 세대에게 제주4·3을 바로 알리는 이정표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2001년 출범 통합 유족회 초대 회장 역임…"지난 과정 한 호흡 볼 수 있어"
'신문' 틀에 담긴 사실 기록 의미, 힘들었던 과거에 대한 공감대 형성 도움


1948년 4월 3일 이후 63년. 지금도 직·간접적으로 4·3을 겪었던 이들이 살아있다. 이들이 겪어야 했던 레드 콤플렉스와 연좌제로 인한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평화로웠던 제주 섬을 '불타는 남도'로 각인했던 4·3의 상흔들이 대물림됐기 때문이다. 유족이라는 이유로 입을 굳게 닫고 살아야 했던 세월 속에서 언제까지 피해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좌·우익으로 나뉘었던 유족회가 4·3특별법 제정 이후 2001년 3월 하나의 깃발 아래 손을 잡았다.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통합 유족회)의 출범이다.

당시의 기록을 담은 신문 자료 앞에서 이성찬 제주4·3평화재단 상임이사의 눈이 촉촉해 진다. 이 상임이사는 당시 통합 유족회의 초대 회장이었다. 제주4·3행방불명인 유족회를 이끌며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던 터라 그날의 기억은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다.

시신조차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생사 여부조차 명확하지 않은 제주4·3 행방불명인들의 기억만을 가슴에 품은 채 시대의 차가운 잣대에 몸서리를 쳤었다. 하지만 4·3특별법 제정 후 유족회가 하나 둘 힘을 규합했고, 4·3수형인 명부가 공개되며 전국 형무소 등에서 당시 행적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작업의 중심에 섰던 이 상임이사에게 그 간의 기억이 고스란히 사진과 글을 통해 정리된 4·3보도물은 그 자신의 '존재의 이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를 묻는 우문(愚問)에 이 상임이사는 옅은 미소와 함께 전시장을 한번 빙 훑는다. 그대로 현답(賢答)이다.

그간의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만큼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유족들에게는 작고 하찮아 보이는 흔적 하나하나가 그대로 살아가는, 또 살아가야할 이유기 때문이다.

이 상임이사는 "제주4·3특별법 제정 이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아직도 어렵고 불편한 과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제민일보의 제주4·3보도기획전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세대에게 제주4·3을 바로 알리는 이정표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도슨트(해설사)까지 두고 4·3평화기념관을 찾는 이들 모두에게 제주의 아픈 과거와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싶지만 신문이란 틀 속에 활자로 인쇄된 것들이 전할 사실로 일부 위안을 했다.

이 상임이사는 또 "교과서에 제주4·3이 수록되고 여러 가지 자료가 나왔지만 개략적인 내용만을 설명하거나 특정한 내용만 소개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이렇게 한 호흡으로 제주4·3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에 대한 유족들의 불안을 덜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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