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47> 4·3 문화운동 ②

마당극 출연자들 '구속 감수' 결의문 채택
이젠 전국 문예공모전도 개최 "격세지감"

   
 
  '놀이패 한라산' 회원들은 마당극을 공연하면서 '구속도 감수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4·3 문화운동 ②
민주화바람이 불기 시작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제주청년문학회, 놀이패 한라산, 우리노래연구회를 주축으로 '제주문화운동협의회'(제문협)가 결성되었다. 또한 그림패 코지가 창립되는 등 진보적 성향의 문화단체들이 속속 출범하였다. 이들은 4·3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드러내는 작업에 앞장섰다. 이들 문화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4·3 행사로 처음 시도한 연합작업이 바로 1989년 4월의 '4·3 추모제'였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4·3 추모제는 11개 시민사회단체로 결성된 4월제 공준위가 주최했는데, 그 중심에 문화단체들이 있었다. 초기의 4·3 문화운동은 이렇게 해마다 열리는 추모제를 중심으로 짜여진 '4월제'에 제문협의 '4·3예술제'가 더해지는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다가 1994년 4·3유족회와 4월제 공준위가 합동 위령제를 치르기로 합의하면서 새 국면을 맞게 되었다. 바로 그 해에 진보 문화예술인들의 결속체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제주도지회가 발족되면서 4·3 문화행사가 '4·3 문화예술제'란 이름으로 연례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4·3 연극은 1987년 놀이패 한라산이 창립된 후 본격화되었다. 처음 공연한 4·3 작품은 1989년 4·3 추모제 때의 마당극 '4월굿 한라산'(연출 김수열)이었다. 당시만 해도 암울하던 시절이라서 단원들은 '구속도 감수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는 일화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마당극 공연 직후 몇몇 단원들이 경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구속자는 없었다. 이 마당극은 그해 서울 신촌 예술극장에서 공연되기도 하였다.

놀이패 한라산은 그 이후에도 '백조일손'(1990), '헛묘'(1991), '꽃놀림'(1992), '살짜기 옵서예'(1993), '사월'(1994), '목마른 신들'(1995) 등 해마다 4·3 마당극을 공연하였다. 대본은 공동 작업을 할 때도 있으나, 주로 김경훈·장윤식이 썼다. 놀이패 한라산은 전국민족극 한마당에 출연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는가 하면 정공철은 '민족광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장일홍이 쓴 4·3 무대극 '붉은 섬'과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가 1992년에, 강용준의 '폭풍의 바다'는 1994년에 제주와 서울에서 각각 공연되었다. 1995년에는 하상길이 만든 '느영나영 풀멍살게'가 서울과 제주에서 공연되었는데, 제주출신 배우 고두심이 주인공으로 출연, 눈길을 끌었다.

   
 
   1989년 4월 처음 시도된 4·3 추모제 행사의 포스터.  
 
1987년 결성된 우리노래연구회는 노래공연으로 4·3을 대중화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또한 1993년 노래빛 사월이 창단되었고, 노래빛 사월의 핵심 단원인 최상돈은 걸출한 '민중가수'로 발돋움하며, '세월' 등 활발한 4·3노래 창작활동과 노래 공연 등으로 현재도 '4·3음악 순례'를 하고 있다. 1987년 이후 전국적으로 4·3 행사 때 자주 불렸던 '잠들지 않는 남도'의 작사·작곡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안치환으로 알려졌다.

4·3 미술은 1988년 창립된 그림패 코지가 그 중심에 있었다. 제주지역의 진보적 미술운동단체 소속 화가들은 1989년 4월 3일 최초로 세종미술관에서 '4월 미술제'를 개최하였다. 이때 비로소 4·3을 형상화한 미술 작품들이 선보이게 된다. 이 작품들은 그해 서울 그림마당 민으로 옮겨져 '4·3 넋살림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는데, 이 전시는 최초로 도외지역에서 이루어진 4·3 미술 전시회로 기록되었다.

이 그림패의 출현으로 4·3 행사장에는 곧잘 걸개그림과 목판화가 선보였다. 특히 박경훈은 1990년 제주와 서울에서 4·3을 주제로 한 '박경훈 목판화전'을 개최해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였다. 1992년 강요배의 '제주민중항쟁사 역사그림전'은 4·3 미술운동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그림패 코지 화가들과, 이후 귀향한 강요배 등은 1994년 탐라미술인협회(탐미협)를 창립하는데, 이 탐미협이 해마다 '4·3 미술제'를 개최하게 된다.

4·3 영상은 1989년 4월 제주MBC의 '현대사의 큰 상처'(연출 김건일 기자)와 6월 제주KBS의 '영원한 아픔 4·3사건'(연출 김기표 PD)이 그 시초가 된다. 그 이후 제주MBC는 해마다 4·3 특집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하였다. 1995년에는 다큐멘터리 '잠들지 않는 함성 4·3항쟁'(감독 김동만)이 상영되었고, 1997년에는 '레드헌트'(감독 조성봉)가 만들어졌는데, 김동만 감독과 '레드헌트'를 상영한 인권단체 대표(서준식)가 구속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은 이렇게 덮여진 통한의 역사, 눈물마저 죄가 되던 험악한 세월을 딛고 4·3 진실회복운동에 나섰다. 구속까지 각오한 굳은 결의로 피워낸 문화예술인들의 4·3문예활동은 4·3의 지평을 넓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전국 중·고등학생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국청소년 4·3문예 공모전'이 열리고, 시 부문 최우수 당선작이 4·3위령제 때 추모시로 낭송되는 세상으로 변했다.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다음 회는 '미군 4·3종합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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