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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시대적 사명감 확인"['제민일보 4·3보도기획전'에서] <6>제주대 학생 김민석·고영호·홍석훈
고 미 기자
입력 2011-06-23 (목) 09:42:02 | 승인 2011-06-23 (목) 09:42:02
   
 
  ▲ 제주대에 재학중인 김민석·고영호·홍석훈씨가 제민일보 4·3보도기획전을 관람하고 있다. 강권종 수습기자  
 
선배들 진상규명 활동 큰 자극 받아
"학교에 4·3 기억하는 공간 생겼으면"


'제주4·3'이 섣불리 아는 채 할 수 없던 어둠에 묻힌 역사였을 때 나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던 이들이 있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을 기점으로 조금씩 불붙기 시작한 학생운동은 제주4·3의 깊은 흉터를 더 이상 못 본 척, 모른 척 할 수 없는 사실로 만들기 시작한다. 제주4·3 발발 40주년인 1988년부터 4·3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꿈틀댔지만 여전히 불편한 역사였다. 이런 흐름에 도화선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대학생'들이었다. 제주대신문이 1989년 특별기획-4·3 그 현장을 가자 "이내 恨을 어이 다 고를 수가 이시코"를 통해 잊혀질지 모를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 이듬해 제주대 교정에서 첫 4·3위령제가 치러졌다. 물론 훨씬 이전부터 시대적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4·3연구를 해왔던 이들이 그들을 지탱했다.

그렇게 20여년의 시간이 흘러 역사의 현장, 그 중심에 선 대학생들의 표정이 결연해진다. 알고 있다고 한 것이 사실 알아야 할 사실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민석 제주대학교 총대의원회 의장(정치외교 4)이 과거 선배들이 흔적을 담은 사진 자료  앞에서 먼저 입을 뗀다. 김씨는 "과거 4·3진상규명 요구가 학내를 넘어 도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을 제주4·3 보도기획전에서 알게 됐다"며 "학내에서 매년 치러지는 4·3관련 행사들을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닌 예전 선배들의 뜻을 확인하고 제주4·3을 제대로 공유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4·3 때 할아버지를 잃었다는 고영호 법정대 학생회장(정치외교 4) 역시 제주4·3의 기록들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아픈 가족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정도의 단순함으로 할아버지의 죽음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큰 자극이 됐다.

고씨는 "전남대학교에 갔을 때 신입생들이 입학과 함께 가장 먼저 5·18기념관에 들르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며 "그런 것에 비해 제주4·3은 근·현대사에 남긴 큰 충격에 비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고씨는 또 "욕심 같지만 제주대에도 제주4·3을 기억하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선배들의 투쟁이 도민 공감대의 기폭제가 됐다면 우리는 그것을 화해와 상생의 상징으로 전국을 넘어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지 않겠냐"고 의지를 다졌다.

홍석훈 사범대 학생회장(국어교육 3)의 목소리는 낮지만 힘이 실렸다. 홍씨는 "제주4·3관련 행사가 겉으로 커지는 듯 보이지만 행사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이 자리에 와서 보니 우리 마음 속 4·3이 그 의미와 달리 점점 작아지는 것은 아닌지 곱씹게 됐다"고 말했다.
보도기획전이 진행되고 있는 4·3평화기념관을 나서는 길, 젊은 대학생들이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신문이란 매체에 담아낸 4·3은 이제껏 들었던 어떤 설명이나 자료들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4·3을 잊혀져가는 슬픈 역사가 아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임을 각인했으면 좋겠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강권종 수습기자 kwonjong@jemin.com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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