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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알게 된 건 운명과도 같죠"['제민일보 4·3보도기획전'에서] <7>4·3 위해 제주 택한 소설가 김창생
고 미 기자
입력 2011-06-30 (목) 09:54:00 | 승인 2011-06-30 (목) 09:54:00

일본어판 「4·3을 말한다」번역 등 활동
평소 자료 탐독 "4·3 작품화 하고 싶어"

   
 
  ▲ 일본어판 「4·3을 말한다」6권을 번역한 소설가 김창생씨는 4·3을 작품화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고미 기자  
 
6개월 내내 목에서 수건이 떠나질 않았다. 더울 때는 땀을 훔치느라 추울 때는 한기를 덜기 위해 수건을 목에 감았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일본어판 「4·3을 말한다」6권이다.

어떻게든 꾸준히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다"는 손사래가 십분 이해가 된다.

재일을 버리고 제주를 택한 소설가 김창생씨(60)의 눈이 제주4·3보도기획전을 느리게 따라간다.

40여 년 전 '제주4·3'을 처음 알고 느꼈던 전율이 다시 몸을 꿰뚫는 듯하다.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맞춰보기를 수차례. 옆에서 이해를 거드는 일 자체가 부끄러울 만큼 풍성한 지식의 양에 취재는커녕 가만히 뒤를 따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김씨가 '제주4·3'과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중문 출신의 부모가 일제시대에 도일, 4·3은커녕 제주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김 작가가 일본 서점을 뒤지다 김봉현의 「제주도 피해 역사」를 만났던 것도, 「4·3을 말한다」의 일본어판 발간을 맡은 신간사 사장과의 친분으로 번역을 하게 된 것도, 4·3을 담은 일본어 희곡을 내고 그 것을 딸이 일본무대에서 작품화한 것도, 그 역사의 현장인 제주에 온 것도 모두 운명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김씨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할 수 있겠다'가 아니라 '해야겠다'였던 것 같다"며 "당시 서점을 운영하며 밤부터 새벽까지밖에 주어진 시간도 없었고, 보다 정확한 사실 전달을 위해 「4·3을 말한다」 1권부터 5건까지 몇 번이나 읽었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이었을까. 전시 자료를 훑어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제주로 영구귀국한지 이제 8개월. 지금도 시간만 나면 탐라도서관에서 4·3관련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제주인으로 제주에서 만난 4·3을 작품화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가고 그녀에게 전시장은 생생한 4·3 아카이브나 마찬가지다.

김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 주인에게 4·3을 말해 달라고 했더니 '간단히'말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며 "아직도 아픈 상처로, 숨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질문을 던졌다.

한 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기자도 마찬가지다. "'간단히'말하기는 어렵다"는 우답이 돌아간다.

김씨는 현재 제민일보에 연재중인 '4·3육필기록'도 빠짐없이 읽고 있다. 제주에서 진행되는 4·3기행이나 순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얼굴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아쉬움을 내비친다.

일본에서 온 일행과 함께 제주4·3평화기념관에 들렀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고민이다. 김씨는 "평화와 화해·상생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공간에 외국어 안내판이나 설명문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필요하다면 자원봉사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자신이 알게 된 제주4·3을 재일한국인들과 일본인들에게도 제대로 전하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김씨는 "이런 형태의 전시는 '사실'을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나눴으면 한다"고 전했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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