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4·3보도기획전'에서] <8>제주4·3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실무위원회 부위원장 송승문

▲ 송승문 제주4·3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실무위원회 부위원장은 "제민일보가 앞장서 제주4·3을 알렸다"고 말한다.
진실 몰라 애태워…언론 역할 감사
"유해발굴 과정 충분한 소개 아쉬워"

전시장을 채운 것은 누군가의 기억에 의해 왜곡되거나 부풀려지지 않은, 오히려 다 알려지지 않은 역사다. 차마 다 꺼내놓을 수가 없어 일부만 전시된 공간을 몇 번이나 더듬는 송승문 제주4·3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실무위원회 부위원장(63)의 눈빛이 흔들린다.

해마다 온 섬이 숙연해지는 4월이 고스란히 전시공간에 옮겨진 때문만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입을 뗀 송 부위원장은 "더 채웠으면 좋았을 것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억 울한 희생으로 점철된 제주4·3의 한 가운데 있었던 그였기에 그 마음이 더 절절하다. 송 부위원장은 제주4·3과 나이가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4·3을 알았고 그것으로 호흡했으면 그것을 위해 살고 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현장에 섰다. 좀체 꺼내려 하지 않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기억을 꺼내 그 때의 아픔을 세상에 드러냈던 것도 그였고 정뜨르 2차 유해발굴을 통해 태어나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찾기도 했다.

'제주4·3'이란 말에 저절로 반응을 한다. 그런 그에게 제민일보 4·3특별취재팀의 존재는 말 그대로 특별하다.

"누구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아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막상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믿어주지도 않았다. 그때는…"

한숨을 내쉬듯 무겁게 토해내는 말에 같이 가슴이 무거워진다. 송 부위원장은 "그 때 제민일보가 앞장서 제주4·3을 알렸다"며 "몰랐던 부분까지 찾아 채워줘 늘 고마운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송 부위원장은 그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동안 제주4·3을 좇은 제민일보의 기록 모두를 모은 스크랩을 통해서다.

그런 그의 입에서 "더…"라는 말이 나왔으니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송 부위원장은 "집단학살 사실을 확인했던 유해발굴과 관련한 내용이 좀 모자란 것 같다"며 "일본 대마도까지 흘러간 유해를 찾아 바다를 건너고 전국에 흩어진 제주4·3희생자를 찾아 고향을 모셔온 내용이 좀 더 소개됐다면 그 때의 아픔이 제주 섬에서 머문 것이 아니고 또 제주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다 상세하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랬다. 해방공간에서 좌우 이념대립으로 촉발된 제주4ㆍ3은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지난 1월까지 결정한 희생자(행방불명자 포함)는 1만4033명이고, 유족은 3만1253명이다.

정부와 제주도는 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지난 2006년부터 희생자 유해발굴 작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유해 396구, 유품 2352점을 발굴하고, 일부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제주 4·3 관련 예산 삭감으로 관련 예산이 한 푼도 책정되지 않는 등  발굴사업이 전면 중단, 북부 예비검속 희생자 등 많은 원혼이 어두운 땅속에서 울음을 삼키고 있다.

송 부위원장은 "지금 조금 아쉬운 것은 지난 일들을 생각할 때 별 것 아닌 부분"이라며 "이렇게 꺼내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미안하면서 또 고맙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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