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56> 한국기자상 수상

한국기자협회 김주언 회장(오른쪽)으로부터 기자상을 받는 필자.

심사위원장 "새 가능성 보인 작품" 격찬
중앙 언론·학계에 4·3 널리 알린 계기돼

한국기자상 수상
"이번의 한국기자상 응모에서 큰 개가를 올린 부문이 '장기기획보도부문'이다. 응모작 중에서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는 압권을 이룬 작품이라는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으며 전 응모작 중 최고점수를 받는 기록을 세웠다. '4·3은 말한다'는 보도기획의도에서 밝히듯 '왜곡된 4·3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4·3특별취재반을 구성, 5년간 수집 분류한 500여종의 국내·외 자료와 국내·외에 걸쳐 2500여명의 증언 취재를 바탕으로 응모 당시 190회(총 500회 연재 계획)에 이른 방대한 기획시리즈물이라는 점에서 한국 저널리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보고 싶다"

1993년 8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5회 한국기자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장 김정기 교수(한국외국어대)가 밝힌 '심사평'이다. 그 자리에는 이만섭 국회의장, 이회창 감사원장, 이기택 민주당 대표, 이경식·한완상 부총리 등 정·관계 인사들과 학계·언론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4·3취재반 연재물에 대한 심사위원장의 과찬이 있었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제민일보 사옥 플래카드 앞에서 기념 촬영한 4·3취재반.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재철·고대경·강홍균·고홍철·김종민·양조훈.
애초 한국기자상에 추천하겠다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을 때, 망설였다. 4·3의 깊은 상처를 앞에 두고, 그것을 대상으로 한 어떤 일을 했다고 해서 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경솔한 행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품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4·3은 말한다'가 중앙에 널리 알려져 4·3논의가 활성화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을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였다.

결과론이지만 '4·3은 말한다'의 한국기자상 수상은 중앙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정치권과 학계, 언론계에서 저마다 제주4·3과 제민일보 연재물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언론계 내부에서는 "제민일보의 4·3 시리즈를 보면서 중앙 언론이 반성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4·3취재반의 활동상을 소개해달라는 원고 청탁도 잇따라 들어왔다. 필자는 한국기자협회가 발행하는 「저널리즘」 1993년 여름호에 "4·3은 여전히 '공산폭동'이어야 하는가", 역사비평사가 펴내는 「역사비평」 1994년 여름호에 "4·3취재 6년-무참히 왜곡된 역사"란 제목으로 4·3 취재기를 실었다. 한편 한국언론연구원은 1996년 '4·3은 말한다'를 탐사보도의 우수사례로 선정하여 원고 청탁을 해왔다. 이에 4·3취재반 김종민 기자가 취재 준비, 취재과정과 방법, 컴퓨터 활용, 취재보도 결과 등 취재반의 활동상을 상세히 기술하였는데, 이에 관해서는 후술하겠다.

한국기자상 수상과 관련하여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비화도 있다. 수상 결정 직후에 전혀 모르는 한 심사위원이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는 "마치 제가 큰 상을 받은 것처럼 흐뭇하기 그지없다"는 글로 시작되었다. 제주도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자신이 4·3의 비극을 처음 안 것은 군 복무 시절 휴가를 다녀온 제주출신 후배 사병이 잠자리에서 흐느끼는 모습에서였다고 한다. 또 오사카에 취재 갔을 때 술집에서 만난 60대 동포로부터 "내가 왜 빨갱이인가. 왜 내가 부모 형제를 잃고 일본으로 와야만 했는가"라는 피눈물어린 체험을 들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후로 왜 4·3의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지 의아해 하던 차에 한국기자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제민일보 시리즈를 보고 흥분했다는 것이다.

"단숨에 상당 부분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4·3을 보는 저의 소박한 생각은 한마디로 냉전적 시각도, 이념적 시각도 아닌 지극히 냉정하고 객관적 입장에서의 진실 규명이지요. 바로 제민일보가 처음으로 4·3을 객관적 입장에서 본격 조명했다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감정과 보복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 돋보이더군요. 많은 관련자의 증언, 사건마다 현장 소개와 취재, 미군정 문서의 발굴 등은 이 시리즈를 더욱 신뢰성 있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보여집니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은 한국기자협회 회장을 지낸 당시 한국일보 이성춘 논설위원이었다. 그는 조바심어린 마음으로 심사에 참여했는데, '4·3은 말한다'가 사실상 만장일치나 다름없는 압도적인 점수로 1위를 차지해서 또 한번  놀랐다는 덕담도 썼다. 그러면서 그는 심사관계 내막은 비밀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외부로 흘러 나가지 않도록 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필자는 이제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본인의 양해 없이 이 사실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회는 '4·3은 말한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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