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57> 「4·3은 말한다」 출간 ①

1993년 한국기자상 수상 이후 4·3에 대한 중앙 인사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왼쪽부터 현기영 소설가, 김중배 한겨레신문 사장, 김찬국 상지대 총장, 강만길 고려대 교수, 필자와 출판을 제의했던 김진홍 교수.

1994년 3월 서울 '전예원'에서 1·2권 출간
한국일보, 출간 전날 톱기사로 선제 보도

「4·3은 말한다」 출간 ①

한국일보 1994년 3월 19일자 톱기사로 보도된 「4·3은 말한다」 출간 기사

1993년 제민일보 4·3취재반의 한국기자상 수상 이후 현대사를 연구하던 중앙 진보학자들이 특별한 시선으로 제주4·3과 우리 연재물을 보기 시작하였다. 몇몇 학자들은 '4·3은 말한다' 연재물을 입수할 수 없느냐고 직접 타진해오기도 하였다. 출판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 무렵 몇몇 출판사에서 '4·3은 말한다'를 책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 가운데도 김진홍 교수(한국외국어대, 신문학)가 적극적이었다. 도서출판 '전예원' 설립자인 그는 한국기자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가 '4·3은 말한다'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인 그는 1982년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교수의 길을 걷게 되면서 전예원 대표는 그의 부인이 맡고 있었다.

전예원은 1988년 「4·3민중항쟁 작품집-4·3島 유채꽃」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이미 발표되었던 현기영·현길언·고시홍·오경훈·오성찬의 4·3 소설과 이산하의 장편시 '한라산'을 한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전예원 측과의 출판 협의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4·3은 말한다'는 500회 연재 계획 중 한국기자상 수상 당시 200회에 근접하고 있었다. 결국 그때까지의 연재 내용을 정리해서 1994년 3월 두권의 책으로 출간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신문에 연재하였던 내용을 책으로 엮으면서 일부 가필 보완하였다. 특히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신문 연재 때 생략하였던 증언자와 인용 자료를 각주(脚註)로 처리하였다. 「4·3은 말한다」 제1권(608쪽)에는 '4·3이 왜 일어났는가?'라는 의문에 초점을 맞춘 4·3 전사(前史)가 다루어졌다. 제2권(485쪽)은 4·3봉기, 화평-토벌의 갈림길, 제주도가 남한에서 유일하게 5·10 단독선거 거부지역으로 역사에 남는 과정 등을 엮었다. 책 말미에는 부록으로 김익렬 연대장의 실록 유고 '4·3의 진실'과 미군 비밀문서, 다랑쉬굴 참사 등을 다룬 특집기사를 실었다.

두권의 책 표지는 강요배 화백의 '4·3역사화'에서 발췌한 그림으로 디자인되었다. 뒷면에는 '4·3은 말한다' 연재에 호평을 했던 재일 사학가 강재언 교수(일본 교토 花園대)를 비롯하여 정윤형(홍익대 교수·작고), 현기영(소설가), 서중석(성균관대 교수), 송지나(극작가), 김정기(한국외국어대 교수) 등 각계인사 6명의 추천 글을 실었다.

출판을 앞둔 4·3취재반은 옥동자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들떠 있었다. 일말의 염려도 있었다. 그 무렵 사회과학도서가 다소 퇴조의 길을 걷고 있는데다, 제주도라는 지역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내친김에 중앙언론사를 방문해서 4·3 연재와 출판 경위를 설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출판사에 연락했더니 1994년 3월 20일 아침에 책이 나온다고 하였다. 필자는 책이 나온다는 그날 첫 비행기로 서울에 올라갔다. 갓 나온 책을 들고 경향·동아·문화·서울·조선·중앙·한겨레·한국일보와 연합뉴스 등 9개 언론사를 방문하였다. 교통이 복잡한 서울에서 하루에 이렇게 많은 언론사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절친한 후배(양동주, 당시 국세청 공보관실 근무·작고)의 도움이 컸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책이 나오기 하루 전인 3월 19일자 「한국일보」에 「4·3은 말한다」 출간 사실이 대문짝만하게 보도되었다. 필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언론사를 방문한 것이다. 톱기사로 보도된 이 기사는 "극우·美서 '공산폭동' 왜곡 주장/'남로당 지령설도 조작' 밝혀 주목/진상규명 첫 체계적 접근"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한국일보 최진환 기자가 출간 사실을 알고 인쇄소에서 가제본한 책을 가져다가 "제주4·3사건이 극우세력과 미국에 의해 '공산폭동'으로 왜곡됐으며 '남로당 지령설'도 정보기관이 꾸며낸 내용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주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면서 "논의조차 금기시되었던 4·3사건에 대해 명확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체계적인 접근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한편으론 고마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다른 언론사 보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다음회는 '「4·3은 말한다」 출간'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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