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58> 「4·3은 말한다」 출간 ②

1994년 4월 3일 전국에 방영된 KBS '책과의 만남-4·3은 말한다' 프로. 왼쪽부터 김남식, 필자, 전영태, 현기영.

중앙 언론마다 출간사실 비중있게 보도
KBS '4·3은 말한다' 1시간 전국에 방송

「4·3은 말한다」 출간 ②

「4·3은 말한다」 제1·2권 출간 사실을 알린 제민일보 사고(1994년 3월 21일자)

「4·3은 말한다」 출간에 대한 한국일보의 선제 보도로 다른 중앙 언론사들이 외면하지 않을까하던 염려는 기우에 불과하였다. 다른 중앙언론사들도 저마다 비중 있게  「4·3은 말한다」 출간 사실을 보도하였다. "제주민중운동 역사적 조명/증언·美비밀문서 토대 진실 파헤쳐"(경향), "더 이상 덮어질 수 없는 진실 '4·3은 말한다'/'공산세력 폭동' 조작과정 소상히 밝혀내"(한겨레), "제주4·3사건 전말 밝힌 보고서"(서울), "3천명 증언 등 3년 9개월 연재"(문화), "1천1백여 쪽 방대한 분량의 4·3사건 보고서 발간"(조선), "미군정 치하였던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일어난 도민봉기의 내막을 파헤친 책"(연합뉴스) 등 각 언론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덩달아 서울 서점가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출판사로부터 출판 5일 만에 재판 인쇄에 돌입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제주시 탐라서적의 주간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4·3은 말한다」가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전예원 관계자는 사회과학도서가 이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필자는 1994년 3월 25일 CBS(기독교방송) '시사자키' 프로(진행 이양원 변호사)에 출연, 15분간 「4·3은 말한다」 출간을 주제로 인터뷰하였다. 그 직후였다. KBS PD가 전화를 걸어와 KBS-1 TV '책과의 만남' 프로에  「4·3은 말한다」를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며칠 사이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시점인데도 오히려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었다.

KBS '책과의 만남' 촬영반 3명이 급히 제주에 내려와 4·3취재반의 활동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PD는 이 프로가 4월 3일 아침에 방영될 예정이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면서 협조를 구하였다. '책과의 만남' 프로는 「4·3은 말한다」를 집중 조명하면서 취재반의 활동상과 책 내용, 한국현대사에 남게 될 족적 등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는 전영태 교수(중앙대)의 사회로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 현대사 연구가 김남식 선생이 출연해 4·3취재반장인 필자와 대담하는 형식으로 짜여 있었다.

3월말 녹화 스튜디오가 있는 서울 여의도 '서울텔레콤'으로 갔다. 이 회사가 외주를 맡아 KBS에 납품하는 형식인데, 연출은 KBS PD가 맡고 있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싸늘했다. 먼저 와 있던 현기영·김남식 선생이 얼른 눈짓을 하며 필자를 옆으로 끌었다. 귓속말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불방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1990년 'KBS 불방 파동'이 머리를 스쳐갔다. 역사 탐험 3부작 중 1부작에 4·3 프로를 만들었다가 불방되는 바람에 교양국 PD들과 노조가 들고 일어났던 사건이다.

조금 있으니 KBS 외주 주간이 다가왔다. 그는 "젊은 PD들이 욕심을 부려 아직 정립이 안된 4·3문제를 정면으로 방송하려고 해서 '높은 분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백지화할 수도 없음을 잘 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 자극적인 말은 삼가주길 바란다. 우리도 가능한 한 불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그 문제를 길게 따져 논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온에어 표시등에 불이 켜지자 사회자를 포함한 4명의 출연진은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어갔다. 그런데 몇분 지나지 않아 중단 사인이 들어왔다. 주간은  몇몇 용어를 수정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사망' '희생' 등 지금 생각해도 별 문제가 안되는 용어들인데,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몇차례 NG가 난 뒤 겨우 촬영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 무렵 현기영 선생이 소설집 「마지막 테우리」 출간을 앞두고 있었다. "테우리가 무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목동을 뜻하는 카우 보이!"라고 넉살좋게 대답하던 현 선생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심각한 방송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제스처였던 것 같다. 서울텔레콤 관계자는 외주 주간이 자기 사무실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책과의 만남-4·3은 말한다'는 1994년 4월 3일 오전 7시부터 1시간동안 전국에 방영되었다. 필자는 그 시간 일본에 건너가 있어서 TV를 보지 못하였다. 「4·3은 말한다」 제1권이 일본어판으로 출간돼 그 기념으로 4월 2~3일 오사카와 도쿄에서 필자의 강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회는 '「4·3은 말한다」 출간' 제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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