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4·3은 말한다」 출간③

▲ 1994년 4월 3일 도쿄에서 서로 손을 굳게 잡고 동지애를 나누는 일어판 관계자들. 왼쪽부터 김중명, 필자, 고이삼, 문경수.
고이삼 대표, 적자 감수 헌신적 출판 감행
출판기념회 오사카^도쿄서 성황리에 열려

「4·3은 말한다」 출간③

▲ 「4·3은 말한다」 일어판 제1권. 일어판 표제는 「濟州島 四·三事件」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4·3은 말한다」 일본어판 제1권은 1994년 4월 도쿄 '신간사(新幹社)'에서 출간되었다. 출판사 대표는 고이삼이다. 아버지 고향이 제주도 우도인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한국말을 잘 모른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순수하면서도 집념의 소유자인 그는 1988년 도쿄 거주 제주인을 중심으로 '제주도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할 때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4·3 알리기에 앞장섰다.

그런 그가 문경수 교수(일본 立命館대)를 통해 「4·3은 말한다」의 일본어판 출간 의사를 알려왔다. 「4·3은 말한다」 일어판은 끝까지 출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래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제1권 일어판은 550쪽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두꺼운 책은 잘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가 제한된 사회과학도서를 편찬하는 것은 경영상 적자를 각오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고이삼은 「탐라연구회보」(제12회)에 실린 '4·3은 말한다 제1권을 출간하며'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 친구의 전화가 왔다. '너는 출판사 사장, 경영자가 아니냐. 그럼에도 왜 돈 벌 수 없다고 알고 있는 것에 열중하느냐'라고. 비록 손해를 입어도 출간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본서를 간행한 후 다시 다짐하고 있다. 거기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고향을 위해서든 우정을 위해서든 여러 요소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내가 느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4·3취재반의 정열을 생각하면 말단이라 해도 그 대열에 참가하고 있는 사실이 상쾌한 감동이다. 괴로워도 기분이 좋다"

이런 사람이기에 만나는 순간부터 동지애가 느껴졌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4·3은 말한다」 일어판 제6권까지 출판하는 약속을 지켰다. 오히려 4·3취재반이 제7권의 원고를 보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현재 한글판 5권까지 나온 「4·3은 말한다」는 제7권까지 출간하여 마무리할 예정이다.

「4·3은 말한다」 일어판은 「濟州島 四·三事件」이란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제1권은 '조선해방으로부터 4·3전야까지'란 부제를 달았다. 번역은 당시 '4·3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를 맡고 있던 문경수 교수와 소설가 김중명이 공동으로 참여하였다. 두 사람 역시 일본에서 4·3 진실찾기에 매진하고 있었다.

「4·3은 말한다」 일어판 출판기념 강연회가 '4·3을 생각하는 모임'과 신간사 공동 주최로 1994년 4월 2일 오사카 재일한국기독교회관에서, 3일에는 도쿄 神田파노세홀에서 각각 열렸다. 필자가 '제주4·3 진상규명의 현주소'란 주제로 강연했다. 오사카 강연장에는 재일동포 이외에도 일본대학 교수와 NHK 기자 등이 참석하였다. 도쿄 강연장에는 「화산도」 작가 김석범과 시인 이철, 임철·이경민 교수 등이 자리를 같이하였다. 김석범 선생은 축사에서 "제민일보 기획물 '4·3은 말한다'가 이처럼 한국어와 일어로 동시 출간된 것은 4·3 진상규명에 있어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4·3은 말한다」 일어판 출판 사실은 「아사히신문(朝日新聞)」과 「마이니찌신문(每日新聞)」 등 일본 유수 신문에도 보도되었다. 또 재일 사학자인 강재언 교수(일본 花園대)와 이경민 교수(일본 호카이도대) 등이 일본어 신문에 서평을 실었다. 강 교수는 "「4·3은 말한다」는 공정한 입장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추적·조사·기록하는 작업이 매우 인상적이며, 현 시점에서 가장 표본적인 실록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신문사 취재반의 세밀한 취재노력에 의해 지금까지 침묵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의 증언이 충실히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은 설득력 있게 독자의 가슴에 다가온다"는 글을 썼다.

일본에서의 바쁜 여정을 지내고 제주에 돌아오니 공안당국에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이 나온 직후 중앙 언론들이 극우세력과 미군이 4·3을 '공산폭동'으로 왜곡시켰고, 정보기관이 '남로당 지령설'을 조작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으니, 어떤 형식이든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중앙 지시에 의해 공안검사가 「4·3은 말한다」를 이 잡듯이 샅샅이 검색했으나, "학술적이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진실의 힘이 버티게 해준 것 같다.

☞다음 회는 '대만2·28사건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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