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헌 제주특별자치도의원

   
 
   
 
장한철은 1744년 애월읍 애월리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인동, 호는 녹담거사(鹿潭居士)로서 제주의 상징인 한라산의 백록담, 즉 제주에 사는 선비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김만덕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제주가 낳은 소중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장한철에 대해 제주도민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장한철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표해록'이라는 한 권의 책 때문이다.

'표해록'은 장한철이 지방에서 치르는 과거의 1차 시험인 향시에 수석 합격한 후 27세의 나이에 서울로 과거시험을 치르러 가기 위해 일행 29명과 함께 영조 46년인 1770년 12월 25일 제주항을 출발한 배가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서 표착한 뒤 온갖 고생 끝에 이듬해 5월 8일 고향에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이 작품은 표류 경로와 계절풍의 방향, 제주도 주변의 지리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문학성뿐만 아니라 역사서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표해록'은 필사본으로 현재 국립제주박물관(장한철 필사본)과 국립중앙도서관(심성재 필사본)에 소장된 2권이 전해지고 있다. 번역되어 발간된 책은 1979년 정병욱 전 서울대 교수가 옮긴 '표해록'을 시작으로 '옛 제주인의 표해록'(김봉옥·김지홍, 2001)과 '그리운 청산도(김지홍, 2001)', '제주선비 구사일생표류기'(한창훈·2008), '표해록'(김지홍·2009) 등이 있다.

'표해록'을 옮겨 쓴 정병욱 전 서울대 교수는 책의 서문을 통해 "이 글은 이역의 풍토와 기이하고 진기한 제재로 엮어진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연애담을 기술한 우리 문학사에서 찾기 드문 해양문학의 백미"라고 극찬했다.

또한 "문학작품으로서 모험담과 연애담을 함께 지닌 전형적인 중세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고, 문헌적 가치로서는 해양 지리지로서의 가치와 설화집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렇듯 각광을 받을만한 불후의 작품을 남기고도 오히려 그 이름에 대한 관심부족으로 훌륭한 역사적 자원이 방치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에 따라 필자는 하귀 가문동에서 애월리까지 해안도로가 시원스레 뚫리고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만큼 생가 터에 '표해록'의 저자 장한철 문학관을 설립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이 주변에는 환해장성, 성벽과 연대 등의 역사유적, 도대불과 빌레, 원담과 해신당, 용천수가 위치해 있어 문화적 테마거리 조성도 가능하지 않을까?

'표해록'에는 제주인의 진취적 기상과 해학, 그리고 애틋한 사랑이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어려움에 처했을 때 표류일행을 다스리며 헤쳐 나가는 지도자의 호연지기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국제자유도시를 향한 '특별자치도호'라는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렇다. 애월지역은 선비의 고장답게 애월문학회가 발족되어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그 맥을 이어오고 있기도 하다.

그 유명한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 못지않게 조선시대 뱃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절절히 담겨있는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이 방치되지 않도록 정책당국이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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