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순 선생 독립유공자 명단서 수년째 제외돼
정당한 평가, 체계적인 추가 발굴 등 노력 필요

▲ 문형순
제주 4·3 당시 수많은 주민들의 목숨을 구하며 한국판 쉰들러로 칭송받았던 문형순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이 국가로부터 수년째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문형순 선생은 각계각층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미포상 인물로 분류돼 있다.

이에 따라 문형순 선생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를 위해 선생의 추가 자료 발굴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독립운동가 문형순

문형순 선생은 죽음의 광풍이 온 섬을 휩쓸고 지나갔던 제주 4·3과 6·25 예비검속 당시 군부의 명령을 과감히 거부하며 수백명의 모슬포와 성산포 주민들을 구한 의인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문형순 선생은 초대 성산포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제주 4·3 당시의 행적 외에도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독립운동사」 제5권 독립군전투사는 문형순 선생이 1930년대 만주 일대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펼친 국민부의 중앙호위대장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사료에서 찾아낸 독립운동참여자 명단에는 1897년 2월7일 태생의 문형순(文亨淳) 선생의 이름이 문시영(文時映)이란 이명(異名)과 함께 올라있다.

김찬흡 제주특별자치도교육의정회 이사장이 저술한 「제주항일인사실기」에도 문형순 선생의 항일운동 활동 내역이 간략하게 소개돼 있다.

김찬흡 이사장은 "문형순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은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며 "충분히 독립유공자로서 칭송받아 마땅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뤄지지 않는 독립유공자 포상

올해도 문형순 선생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06년 8월30일 고 전정택 제주지구 평안도민회장이 문형순 선생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했지만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로부터 내려온 답변은 입증자료 미비, 사후행적 불분명으로 보류됐다는 회신 뿐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10년 4월12일 추가 자료를 찾아 국가보훈처에 보냈고 재심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후에는 이대수 전 제주보훈청장까지 자료를 찾아가며 2011년 3월15일 재차 자료를 보냈지만 지금의 자료로는 더 이상의 재심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이어질 뿐이다.

문형순 선생의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를 맡은 국가보훈처 조철행 연구관은 "문형순 선생과 그의 이명(異名)으로 알려진 문시영이라는 인물이 동일인인지 아직까지 정확한 증거자료가 나와있지 않다"며 "문형순 선생의 사후 행적 또한 묘연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전 청장은 "연구 논문과 책에서 문형순 선생이 문시영이라는 이명을 썼다는 자료가 분명이 나와 있다"며 "지금의 자료가 불충분 하다니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변지철 기자 jichul2@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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