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속 ‘클라리넷 소녀’ 유인자 할머니
15일 2011제주국제관악제 환영음악회 참가

단아하고 부드러운 클라리넷의 음색이 스치듯 제주시 해변공연장 무대를 떠나 여름 밤 하늘을 흔들었다. 이내 ‘와’하는 함성과 뜨거운 박수가 뒤엉키고, 다음은 다시 클라리넷을 위한 침묵으로 돌아선다.

광복절인 15일 2011제주국제관악제 환영음악회 ‘관악만세’무대는 ‘특별한 손님’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무대 옆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60여년전 흑백사진이 비춰지고, 자신의 키 만한 클라리넷을 야무지게 연주하던 단발머리 소녀는 그 때 자신 만큼 어린 손녀의 격려를 받으며 무대에 섰다.

2010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제주 관악의 뿌리를 찾기 위한 이벤트로 펼쳐졌던 ‘클라리넷 소녀를 찾아라’의 주인공인 유인자씨(71)가 가족들과 함께 제주를 찾았다.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으로 꿈을 키우고 주변에 희망을 선사했던 ‘소녀’의 모습은 세월을 따라 멀리 가버렸지만 마음만은 그대로였다.

과거 자신의 모습을 담은 대형 액자를 건네받으며 살짝 홍조까지 띠었던 유 할머니는 “그대로 무대를 내려가게 할 수는 없다”는 진행자의 말에 발을 멈췄다.

지난해 11월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 측과 연이 닿은 이후 딸이 선물해준 클라리넷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 할머니는 제주윈드오케스트라와 함께 당시 즐겨 불렀다는 ‘메기의 추억’으로 해변공연장을 찾은 도민과 관광객, 관악제 참가단 등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고운 음색은 분홍색 정장을 차려입고 그 시절로 돌아간 유 할머니와 닮았다. 행여 할머니의 클라리넷 소리가 묻힐까 가만히 연주를 도운 제주윈드오케스트라 역시 전원 기립으로 연주에 대한 경의를 표시했다.

3분여의 연주가 남긴 것은 오래 잊을 수 없는 깊은 감흥, 그리고 제주국제관악제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었다.

관광객 김경보씨(44·서울)는 “휴가를 보내러 왔다가 쉽게 하기 힘든 추억을 챙겨가는 것 같다”며 “처음 접한 제주국제관악제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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