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래들어 인적이 뜸해지자 비양도의 펄랑물은 철새들의 보금자리고 되고 있다.

◈펄랑물(한림읍 비양리)

 날아온 섬,비양도(飛揚島)로 간다.한림읍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4.5㎞의 거리에 있다.

 멀리 협재해수욕장의 하얀 백사장이 눈에 들어온다.바다는 연두빛.겨울 같지 않은,맑은 날씨 때문인지 짙푸른 하늘에 넋을 잃고 만다.

 겨울 문턱에 선 이 바다는 푸르른 단순함만 넘치는 그런 바다가 아니다.계절에 따라,빛에 따라,대기중의 습도에 따라 민감한 차이로,예민한 사람만 느낄수 있는 섬세한 감각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도항선인 비양호를 타고 10분 남짓 달렸을까.비양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앞개’가 펼쳐진다.이 포구는 마을 앞 조간대 상층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앞개’다.‘군여’와 ‘너부여’사이에 들어서 있으며 ‘안캐’와 ‘밖캐’로 구분됐다.

 원래 ‘앞개’의 중심은 ‘안캐’다.‘넙적빌레’를 정으로 깨면서 만들었다.

 이곳에도 삶의 지배조건은 바람이다.‘앞개’는 지형적으로 마파람에 약하다.‘삼부새’라는 바람이 들이 닥칠때면 닻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한다.망오름을 업고 불어오는 ‘흐내기’도 간과할 수 없다.포구를 감싸고 돌기 때문에 물결이 시시각각 불었다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어느 하나 그냥 스쳐 지나갈 간들 바람은 아니어서,특히 포구에 붙박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들 바람과 맞서 생존을 위한 숙명적인 싸움을 벌여야 했다.

 비양도는 섬 전체가 습지다.오저부리와 너부배원,낭시끄는 코지,배댄코지 지경의 큰원·족은원,애기업은 돌 등은 조간대 중층에 자리잡은데다 풍광 또한 뛰어나다.바닥은 크고 작은 돌멩이와 모래가 깔려있고 여기저기 물 웅덩이를 이뤄 수생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특히 펄랑물은 비양도의 대표적인 습지로서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왜가리과의 황로와 백로·왜가리가 날아오고 흰뺨검둥오리(오리과),논병아리(논병아리과) 등도 눈에 띈다.인적이 드문데다 염습지로서 갯고둥·기수갈고둥·댕가리·소금쟁이·사각게·방게 등 철새들의 먹이감이 비교적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 펄랑물 한켠에 자리잡은 포제단은 비양리 주민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다.대충 다듬은 현무암을 170㎝가량 쌓아 울타리로 삼고,그 안의 북쪽 담 가까운 곳에 2m 높이의 암반무더기가 본향단이다.

 비양도 주민들은 지난 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인해 해일 등의 큰 피해를 입게 되자 펄랑물 쪽에 제방을 축조했다.그러나 펄랑물에서 바다와 접하는 최단거리가 50m에 불과해 지금도 밀물때면 바닷물이 땅밑에서 혹은 암반 틈에서 스며들고 있다.

 펄랑물은 면적이 1만7500㎡규모이며 바닥에 뻘이 많아 ‘펄랑’이란 지명이 붙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결과 식물분포를 보면 서쪽에는 해송군락이 있고 펄랑물의 동북쪽과 만나는 오름의 북동사면은 신이대 군락이,오름의 동쪽사면은 억새군락이 자리잡고 있다.

 갯질경이·돌가시나무·해홍나물·구기자나무·갯까치수염·닭의장풀·번행초·갯메꽃·순비기나무·갯완두·땅채송화·억새·갯잔디·갯강아지풀·띠·갯겨이삭·갯하늘지기·파대가리·천일사초 등도 띄엄띄엄 자생하고 있다.

 비양도는 기록으로볼 때 1914년까지 화산활동을 했던 곳이다.분화구 주변에 각종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섬이다.

 그러나 이곳도 개발바람에 밀려 온전한 섬의 모습이 깨지고 있다.우선 눈에 띄는 게 해안도로.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3.5km의 해안선을 따라 시멘트 도로가 개설됐다. 

 관광객들이 과연 뭍에서나 다름없는 시멘트길을 걷고 싶어 하는 지,아니면 예전처럼 숭숭 구멍이 난 자갈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지,설문조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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