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67> '불법계엄령' 보도 논쟁①

제민일보 취재반이 정부문서기록보존소에서 찾아낸 제주도지구 계엄 문건. 이승만 대통령과 국무위원의 자필 서명이 선명하다.

미군조차 "계엄령 선포된 적 없다" 부인
법률전문가들도 "계엄령은 불법"에 동의

'불법계엄령' 보도 논쟁①
1997년 4월 1일 「제민일보」와 「한겨레신문」은 "4·3계엄령은 불법"이란 기사를 대서특필하였다. 두 신문은 "제주4·3 때 제주도민 대량학살의 법적 근거로 알려진 계엄령은 당시 이승만 정권에 의해 불법적으로 선포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 충격파를 던졌다.

1996년 10월부터 초토화작전의 참상을 마을별로 전수조사하던 4·3취재반에게 '계엄령'은 괴물처럼 다가왔다. 글자를 모르는 할머니조차도 '계엄령'이란 용어만은 빠뜨리지 않았다. 남편이, 혹은 아들이 군경토벌대에게 무고하게 희생당했다고 강조하면서 말미에는 꼭 "그때는 계엄령 시절"이라며 '시국 탓'을 했다. 그들에게 계엄령은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여도 되는 제도' 쯤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실제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4·3계엄령은 그 실체부터가 불분명했다. 자료를 찾아 추적하면 할수록 엇갈리는 부분이 많았다. 계엄 선포 날짜부터가 그랬다. 국방부의 「대비정규전사」, 제주도경찰국의 「제주경찰사」, 제주도의 「제주도지」(1982년판) 등 관변자료에는 '1948년 10월 8일'에 계엄령이 선포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또한 「김녕리 향토지」는 그해 '10월 1일', 「주한미군사고문단 문서」는 '11월 16일', 「주한미군사령부 정보보고서」는 '11월 17일', 「조선일보」는 '11월 21일' 등 계엄령 선포 날짜가 각기 다르게 기술돼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과연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는지조차 의심케하는 자료도 있었다. 「조선일보」 1948년 11월 20일자에는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말이 떠돌고 있으나, (11월) 19일 국방부는 이를 근거없는 뜬소문이라고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즉, 국방부 보도과가 밝힌 담화는 "이즈음 모든 신문을 비롯하여 항간에 떠도는 말과 같이 제주도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된 일은 없다. 각처에서 폭동이 일어나므로 군에서는 작전상 경계를 엄중히 한 것이 민간에 오해된 모양이다"는 것이었다.

더 희한한 내용은 주한미군 기밀문서에서 발견되었다. 1949년 2월 5일자 「주한미군사령부 정보보고서」에는 "지난 1948년 11월 17일에 선포됐던 제주도 지역에 대한 비상사태는 한달전에 해제됐지만 그 효력에 대한 공식적인 사전 언급은 없었다(중략). 비상사태(the state of emergency)는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에 의해 계엄령(martial law)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계엄령은 현 한국정부에 의해 선포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기재돼 있었다.

이렇게 말만 무성하고 실체는 종잡을 수 없는 계엄령 관련 자료들을 분석하다보면 마치 미로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한방에 날린 문건이 발견되었다. 제민일보 서울 주재기자인 진행남 기자가 총무처(현 행정안전부) 산하 정부문서기록보존소에서 '제주도지구 계엄선포 문건' 원본을 찾아낸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국무위원 12명의 자필 서명이 선명한 이 문건은 1948년 11월 17일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제주도지구에 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이었다. '대통령령 제31호'로 공포된 이 계엄문서에는 "제주도의 반란을 급속히 진정하기 위해 동 지구를 합위지경(계엄지역)으로 정하고, 본령 공포일로부터 계엄을 시행할 것을 선포한다. 계엄사령관은 제주도 주둔 육군 제9연대장으로 한다"고 되어 있었다. 결국 계엄 공포 날짜는 기존의 관변자료 등이 다 틀린 반면, 「주한미군사령부 정보보고서」만 맞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이 계엄은 1948년 12월 31일자로 해제된 사실도 밝혀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친 계엄령에 대해 왜 국방부 보도과와 언론이 그 사실을 부인했는지, 당시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던 미군이 왜 뒤늦게 계엄령이 선포된 바가 없다고 부인했는지 등등이다. 그 와중에 계엄사령관조차 계엄령의 내용을 몰랐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4·3 당시 서귀포경찰서장을 지낸 김호겸은 "계엄사령관인 송요찬 연대장조차도 계엄령이 뭔지 몰라 우리 경찰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4·3취재반은 이런 계엄 관련 문건들을 분석하다가 계엄령이 불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제헌헌법 제64조(계엄선포권)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고 되어 있는데, 계엄법(법률 제69호)은 4·3계엄령을 내린 지 1년이 지난 후인 1949년 11월 24일에야 제정 공포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당 법률도 없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단 말인가?

행여나 자의적인 해석은 아닌지 염려되어 법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최병모 변호사, 김순태 교수(한국방송대 법학과·작고) 등은 우리 해석이 맞다고 동조해왔다. 4·3계엄령이 불법이라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음회는 '불법계엄령 보도 논쟁'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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